수년째 이어지는 세계 경제의 저성장 기조와 미·중 무역전쟁으로 대표되는 보호무역주의 확산 등의 영향으로 한국 경제가 저성장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와 대조적으로 한때 ‘유럽의 병자’라고 불렸던 프랑스 경제는 과거의 침체에서 벗어나 활기를 띠는 모 습이다. 두 나라의 정부는 2017년 5월 나흘 차이로 취임했는데, 3년이 지난 지금, 두 나라의 경제상황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나라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경제는 유독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다. 2017년 이후 경제 성장률이 잠재성장률 수준인 2% 중반대로 내려 앉은 가운데, 지난해에는 미·중 무역전쟁에 우리나라 수출 효자종목인 ‘반도체’ 업황이 부진한 모습을 보임에 따라 잠재성장률에도 미치지 못하는 2%에 겨우 턱걸이했기 때문이다. 이는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0.8%) 이후 10년 만에 가장 낮은 것으로, 그나마 정부의 확장적 재정 정책에 더해 2019년 4분기에는 2% 성장을 방어하기 위해 재정을 집중한 결과다.
우리나라 경제가 이처럼 부진한 모습을 보인데에는 글로벌 불확실성 확대 등 대외 여건이 악화한 때문도 있지만, 국내 경제와 관련한 정책적 여건이 좋지 않은 영향도 크다. 문재인 대통령은 당선 이후 대선 때 공약했던 대로 ‘소득주도성장’의 일환인 ‘최저임금 1만원’ 달성을 위해 2018년과 2019년 최저임금을 각각 16.4%, 10.9%씩 인상했고, 법인세는 최고세율을 2018년 22%에서 25%로 올렸다. 하지만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으로 중소기업, 소상공인 등의 인건비 부담이 키웠고, 저소득층의 소득을 높여 경제를 활성화하겠다는 ‘소득주도성장’은 아이러니하게도 저소득층의 일자리부터 하나씩 없애는 결과를 낳았다.
또한 기업심리 위축과 실적악화 등의 영향으로 지난해 법인세수는 7조원이나 평크났다. 혁신을 위한 규제개혁을 외쳤지만, 과연 무엇이 바뀌었는지 국민이나 기업이 체감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하다. 경제상황이 계속 안 좋아지자 정부는 소득주도성장을 사실상 포기하고, 최저임금 인상률을 2.9%로 대폭 낮추는 한편, 기업의 세제감면 혜택을 늘리는 등 투자 활성화를 위한 대책들을 내놨지만, 한 번 가라앉은 경제를 다시 끌어올리기란 좀처럼 쉬운 일이 아니다.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강자로 변한 佛
반면, 문재인 정부와 비슷한 시기에 출범한 프랑스의 마크롱 정부가 일궈낸 경제는 우리나라와 전혀 다른 모습이다. 문재인 대통령보다 나흘 늦은 2017년 5월14일 취임한 마크롱 대통령은 ‘유럽의 병자’라고 불렸던 프랑스의 경제를 탈바꿈시켰다. 노동자에 과도하게 집중됐던 각종 혜택을 축소하고, 기업들이 효율적으로 경영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했으며, 스타트업 육성과 해외 투자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섰다. 그 결과 프랑스(0.3%, 2019년 3분기)는 ‘유럽의 성장 엔진’이라고 불리는 독일(-0.2%, 2019년 3분기)의 경제 성장률을 앞질렀고, 일자리 증가, 실업률 감소 등 고질적인 일자리 문제도 해결할 수 있었다.
2월25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세계경기가 2017년 정점을 찍은 후 작년까지 둔화하는 동안 한국성장률은 1.2%p 하락해 프랑스(△1.1%p)보다 큰 하락폭을 보였다. 양국 모두 정부를 제외한 민간의 성장 기여율이 감소했는데, 한국의 상대적으로 더 많이 떨어졌다. 2017~2019년 프랑스의 민간 성장기여율은 82.6%에서 58.3%로 감소했지만, 한국은 78.1% 에서 계단식으로 추락해 25.0%로 대폭 줄었다.
한경연은 가계 소비, 기업투자 등 민간경제의 활력이 빠르게 위축되고 있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경제 성장세가 잠재성장률을 따라가지 못하면서 잠재 GDP와 실제 GDP의 차이를 잠재 GDP로 나눈 비율인 GDP 갭률은 한국만 악화됐다. 한국의 GDP 갭률은 2017년 △1.1%에 서 2019년 △2.1%로 2배 확대돼 같은 기간 프랑스가 마이너스 폭을 절반 수준으로 줄인 것과 대조됐다. 또한 투자처로서 대외 매력도를 보여주는 외국인의 국내집접투자 순유입(FDI)도 프랑스는 2017년 298억 달러에서 2019년 1~3분기 393억 달러로 늘어난 반면, 한국은 127억 달러에서 58억 달러로 대폭 감소했다.
고용률개선도 한국이 부진했고, 그 결과는 고스란히 소득에 반영됐다. 2017년 1분기 대비 2019년 4분기 고용률 (15~64세, 계절조정)은 프랑스가 1.6%p 증가했으나 한국은 0.6%p 증가에 그쳤다. 국민총소득(GNI)은 1인당 GNI가 4만 달러인 프랑스에서 연 3~4%씩 늘었는데, 2018년 1인당 GNI 3만 달러에 진입한 한국은 GNI 증가율이 급격히 둔화하며 작년 1~3분기 0.0%까지 떨어져 선진국과의 소득 격차가 확대됐다.
佛 경제 개혁 성공 요인①–“일하지 않은 자 먹지도 말라” …강력한 노동개혁
프랑스경제가 ‘유럽의 병자’에서 ‘유럽의 강자’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데는 프랑스정부의 ▲기업친화적 정책과 ▲적극적인 해외 투자유치 노력을 꼽을 수 있다. 지난해 12월10일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는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 련) 초청 간담회에서 “프랑스는 마크롱 대통령 취임 이후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기 위해 많은 개혁을 추진했다. 노동법, 조세, 교육 등 다방면에서 시장개선을 위한 노력을 해 2009년 이후 최저 실업률을 기록할 수 있었다”며 “프랑스는 올해 9월(2019년 9월) 법인세를 33%에서 31%로 인하하겠다고 발표하고, 향후 2022년까지 25%수준으로 인하할 예정이다. 또한 2022년까지 공공인력 8만5,000명을 감축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마크롱 정부가 프랑스 경제개혁을 위한 기업친화적 정책을 추진함에 있어 가장 핵심은 노동시장의 유연성 제고를 위 한 ‘노동개혁’이었다. ‘근로자의 천국’, ‘파업의 나라’ 등으로 불리며 전통적으로 노조의 힘이 강했던 프랑스는 실업률이 10.36%(2015년)에 달했을 정도로 고질적인 일자리 문제에 시달리고 있었다.
일자리 나누기를 위해 도입된 ▲주 35시간제 ▲까다로운 해고·감원 요건 ▲상한이 없는 부당해고 배상금 등의 부담을 안고 있는 기업이 생산성 대비 과도한 인원을 고용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자리 창출은 꿈도 못 꿀 일이다. 또한 기업경영 효율화를 위해 구조조정을 단행하기라도 하면 노조의 강력한 반발에 가로막혀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과거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노조의 문제점에 대해 인식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한 정책들을 추진했었지만, 번번히 실패하고 말았다.
프랑스는 전통적으로 노조의 힘이 상당히 강한 나라다. 프랑스 노동총연맹 ‘세제떼(CGT)’ 사무총장이 국무총리, 재무부 장관 등 나라의 경제수장과 TV 대담을 하는 자리에서 임금 인하 등 정부측 개혁안이 적힌 종이를 찢으며 그들에 심한 욕설을 퍼부었던 일화는 프랑스 노조의 힘을 단적으로 보여 준다고 할 수 있겠다.
지난달 18일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열린 ‘개혁으로 부활한 프랑스경제, 한국경제에의 시사점’에서 홍성민 동아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프랑스유학 시절 엄청난 파업을 경험 했다. 프랑스는 철도, 지하철, 버스가 전부 국영기업이라서 파업을 하면 정말로 자전거를 타고 출퇴근을 해야 하는데, 한 3달 정도 파업을 하더라”며 “별로 큰 이슈가 없어도 5월 노동 절 전후 한 달, 10월 한 달은 으레 파업을 한다. 법적으로 받은 2~3달 정도의 휴간까지 합하면 1년에 5달은 노는 것이다. 경제학에 문외한인 사람이 봐도 노조를 개혁하지 않고서는 경제가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게 된다”고 말했다.
이런 노조,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개혁을 추진한다는 것은 그 만큼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마크롱 대통령은 “일하지 않는 자는 먹지도 말라. 그 대신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은 정부가 적극적으로 돕겠다”는 구호를 앞세워 해고·감원 요건을 완화하고, 부당해고 배상금의 상·하한선을 지정해 기업의 해고 부담을 줄이는 한편, 근로협상 권한을 산별노조에서 기업노조로 이관, 기업이 재량 권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등 프랑스 기업경영환경 중 가장 큰 문제로 지적됐던 노동법 관련 경영 어려움을 해소했다.
동시에 일할 의지가 있는 사람에 대해서는 새로운 기술을 습득 할 수 있는 교육 기회나 새로운 직장을 잡을 수 있도록 재취업 기회를 마련하는 등 국가 차원에서 기회를 제공했다. 그 결과 프랑스는 고질적인 일자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마크롱 대통령이 취임했던 2017년 9.4%에 이르던 실업률은 2년 반이 지난 2019년 2분기 기준 8.44%까지 떨어져 2009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낮은 수준을 보였다.
같은 기간 한국의 실업률이 0.4%p 상승한 것과 대조적이다. 강화된 노동시장 유연성으로 인력 구조조정이 가능해진 프랑스 기업들은 불필요한 인원에 대한 해고로 인건비 부담이 줄어들자 신규 채용을 늘리기 시작했다. 이는 특히 청년 일자리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었는데, 2017년 3분기 22.18%에 이르던 청년 실업률은 2019년 3분기 19.22%로 3%p가량 하 락했다. 일례로 푸조·시트로엥을 생산하는 프랑스 최대 자동 차 제조사인 PSA그룹은 1,300명을 희망퇴직으로 감원하는 대신 그와 비슷한 규모의 정직원을 신규채용하는 것은 물론, 추가적으로 2,000명의 인턴 및 기간제 직원을 채용하기도 했다.
‘철밥통’ 공공부문에도 칼날…SNCF 노조 개혁 성공
강력한 노동개혁은 공공부문이라고 예외가 아니었다. 프랑스 국영철도공사(SNCF)의 노조를 성공적으로 개혁한 것이 대표적이다. SNCF는 ‘프랑스병’을 상징하는 국영기업으로, 적자 규모만 466억 유로(약 60조원)에 이를 정도로 방만·비 효율 경영을 80년간 이어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SCNF의 직원들은 평생 고용을 보장받고, 52세에 조기퇴직을 해도 더 연금을 받을 수 있었으며, 높은 연봉인상률에 더해 직원 가족에게는 무료승차권이 제공되는 등 혜택을 누려왔다.
프랑스 상·하원은 2018년 6월14일과 15일 정부의 SCNF 개 편안을 본회의 표결에 부쳐 가결시켰다. 마크롱 대통령은 그 동안 “25세 청년을 100년 전과 같은 조건으로 고용한다면 철도공사는 더 이상 존속할 수 없다”고 강조해왔다. 마크롱이 SNCF에 개혁의 칼날을 들이대자 노조는 4월부터 일주일에 이틀씩 3개월간 파업으로 맞섰지만, 여론의 지지를 받지 못하고 파업 동력을 잃어버렸다. 노조는 정부의 개혁시도를 극렬 파업으로 매번 좌절시켰다.
1995년 자크 시라크 정부와 2010년 니콜라 사르코지 정부도 SCNF의 연금 및 복지혜택 을 축소하려고 했지만, 노조의 반발에 막혀 의회 상정조차 하지 못했다. 때문에 마크롱 대통령의 SNCF 노조개혁 성공은 1984년 마거릿 대처 당시 영국총리가 광산노조와의 1년 넘는 싸움에서 이겨 공공부문 개혁에 성공한 것과 비견될 만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개편안에는 2020년 새로 뽑은 직원에 대해서는 종신 고용 혜택을 없애고, 조기퇴직해도 더 많은 연금을 받았던 혜택도 줄이기로 했다. 가족에게 제공되던 무료승차권도 사라진다. 이와 함께 책임경영 강화를 위해 SNCF와 별도의 합작회사를 설립할 수 있는 길을 열어놨다.
프랑스정부는 SNCF 외의 철도 운영사를 만들어 요금과 서비스에서 경쟁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프랑스 내 여객철도 부문의 SNCF 독점 권도 2020년부터 단계적으로 없앨 방침이다. 또한 프랑스 정부는 2022년까지 공공부문 인력 8만5,000명을 감축하겠다는 계획도 발표했다. 이는 2020년까지 20만 5,000명의 공공부문 비정규직을 정규직화하겠다는 한국 정부의 발표와 대비된다. 엄치성 전경련 국제협력실장은 “연일 격렬하게 진행되던 ‘노란조끼’ 시위가 기억나지 않을 만큼 프 랑스 경제에는 활기가 돌고 있다”며 “반면, 한국 경제는 민간 소비가 최근 2년 내 0%대 성장률을 보이고, 투자 또한 마이너스 8~9%를 기록하는 등 활력을 잃고 있다”고 지적했다.
법인세율·소득세율 인하 등 세부담 감축
노동개혁과 함께 프랑스 정부는 최고 33.3%인 법인세율을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25%까지 인하해 기업들의 세부담을 덜어줄 계획이다. 이를 위해 2019년 9월 연매출 2억5,000 만 유로이상 기업에 부과되던 33.3%의 법인세를 31%로 인하하고, 그 미만 기업에 대해서는 법인세를 31%에서 28%로 낮추기로 했다. 관련해서 르포르 대사는 “(프랑스 정부는) 노 동시장 유연성 제고와 세제부담 감축을 위해 노력했다.
연구개발에 대한 세액공제는 30% 수준으로, 삼성과 네이버도 프 랑스에 R&D 센터를 오픈하기로 했고, 최근에는 SK종합화학에서 현지 화학기업의 사업부문을 인수했으며, 또다른 한국 기업과도 많은 협상을 진행 중”이라고 말했다. 기업의 세부담만 낮춰준 것은 아니다. 마크롱 대통령은 ‘부자 들의 대통령’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면서도 일정액 이상의 자 산을 가진 사람에게 누진적으로 과세하는 부유세를 폐지했다.
프랑스의 부유세 최고세율은 75%에 달했다. 부의 불평 등 해소를 위한 분배의 개념으로 도입된 부유세지만 세금은 오히려 걷히지 않았고, 부자들은 프랑스를 버리고 영국, 벨기 에 등으로 떠나기 시작했다. 실제로 올랑드 정부 시절 세계 2위 부자인 베르나르 아르노 르이뷔통에헤네시 그룹 회장이 벨기에로 국적을 옮기려다 국민적 비난에 취소한 일화는 유명하다.
부유세 도입 이후 프랑스는 두 자릿 수 실업률과 0%대 성장률을 기록했고, 2014년 말 실업자 수는 350만명까지 오를 정도로 경제 상황이 악화됐다. 이와 함께 마크롱 대통령은 지난해 4월 소득세 인하를 약속하고, 같은 해 9월 법인세 인하 발표와 함께 연소득 9,946유로(약 1,300만원)부터 2만7,519유로(약 3,600만원)에 부과되던 소득세율을 14%에서 11%로 인하한다고 발표했다. 소득세율 인하를 발표하면서 마크롱 대통령은 “일하는 사람들에게는 소득세를 대폭 내리려고 한다”면서 “프랑스는 이웃(국 가)보다 일을 덜한다. 우리는 이에 대해 실질적인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佛 경제 개혁 성공 요인 ②–‘프랑스를 선택하세요’ …해외 투자 4.6조원 유치
프랑스 경제 개혁의 두 번째 성공 요인은 국가 차원의 투자 유치 노력이다. 대표적으로 ‘프랑스를 선택하세요(Choose France)’가 있다. 매년 1월 열리는 범정부 차원의 해외 투자 유치 행사로, 대통령과 장관 모두 참석해 프랑스 투자의 장점 등을 장관이 직접 발표한다. 구글, 페이스북, 삼성전자 등 매년 30여개 국가에서 150여명의 기업 CEO가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대통령, 총리 등 정부 지도자들과 직접 대화를 할 수 있고, 지속성이 있는 연례행사라는 점에서 글로벌 기업의 호응이 좋다고 한다.
프랑스는 이를 통해 2018년 향후 5년간 35억 유로(약 4조6,000억원)의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성과를 올렸다. 르포르 대사는 “외국 기업 유치를 위해 외국인 기업 주재원의 체류증 해결, 자녀들의 학교 등록, 부동산 구입 등에 관련된 모든 것을 단일 창구화했다”며 “유럽에서는 제2의 투자 대상국이 됐고, 영국, 독일에서는 외국인 투자가 각각 13%씩 줄었을 때 프랑스는 1% 증가했다”고 말했다.
엄치성 국제협력실장은 “프랑스 등 선진국들이 앞다퉈 과감하게 기업환경을 개선하는 동시에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투자유치정책으로 경제활성화를 위해 적극 나서고 있다”면서 “특히, 미국과 프랑스가 유사하게 범정부 차원에서 대규모 연례투자유치행사를 대대적으로 추진하는 것은 최근 투자가 감소하고 있는 우리 경제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강조했다. 이밖에 스타트업 육성에 적극적인 것도 프랑스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됐다.
마크롱 대통령은 2025년까지 ‘유니콘 기업 (기업가치 1조원 이상 스타트업)’을 25개 이상 만들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스타트업 육성을 위해 33세의 젋은 벤처창업자인 ‘무니르 마주비’를 디지털경제부 장관에 임명, 파리 13구역의 기차 화물기지를 개조해 ‘스타시옹 F(Station F)’를 만들었다.
‘프랑스판 실리콘벨리’다. ‘스타시옹 F’에는 현재 1,000 개 이상의 스타트업이 입주해 있고, 마이크로소프트, 구글, 페이스북 등 글로벌기업의 투자를 받고 있다. 아울러, 종업원 10명 이하, 연매출 200만 유로 이하인 마이크로 기업의 분류기준을 낮춰 부가가치세를 면제받을 수 있는 기업을 늘리는 등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도 확대했다. 이로 인해 2018년 프랑 스에서 새롭게 창업한 기업 수는 69만개로 17%나 증가했고, 마이크로 기업인은 28%가 늘어 100만 명을 넘어섰다.
“프랑스 경제 개혁, 좌파 정부가 좌파의 성과에 칼 댄 것”
전문가들은 프랑스 경제 개혁이 성공할 수 있었던 이유로 좌파 인사인 마크롱 대통령이 프랑스가 쌓아 온 좌파의 성과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고, 거기에 칼을 댔기 때문이라고 설명했 다. 막강한 힘을 가진 노조의 문제점, 경쟁력을 잃은 경제를 이제는 바꿔야 한다는 좌파 정당 출신 정치인의 꾸준한 문제 제기에 대해 국민이 진정성을 느끼고, 변화의 필요성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또한 대통령이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반대하는 사람들을 설득하기 위한 리더십을 발휘 한 점도 유효했다.
사실 마크롱 등장 이전에 프랑스 우파나 좌파 정권에서 여러 번 실패와 시행착오가 있었다. 미테랑 정부는 우파의 신자유주의 정책을 받아들였고, 올랑드 정부에서는 부자 증세를 없앤다거나 주35시간제 폐지, 노동개혁 등 마크롱이 했던 것들을 하려고 했지만, 잘 안 됐다. 사르코지도 법인세 인하, 부유세 없애고 연금개혁을 추진했으나 성공하지 못했다.
김도훈 서강대학교 국제대학원 초빙교수(전 산업연구원장) 는 “프랑스에는 국가적으로 얻어진 성과, 한번 갖춰놓으면 설사 우파 정부가 들어섰다고 해도 그것을 건드릴 수 없다는 심리적 저항감, 불문율 비슷한 것이 있다”면서 “주35시간제나 굉장히 빠른 정년제도 등을 마크롱 대통령이 처음으로 그것을 정면으로 건드리기 시작했다는 것이 성공의 큰 요인”고 말했다.
김 교수는 “어떤 의미에서 우파 대통령들이 이 문제를 건드리는 것은 프랑스의 사회민주주의적인 제도의 업적을 건드리는 것이기 때문에 공격받을 가능성이 있는데, 좌파, 즉 사 회당 출신의 대통령이 정식으로 프랑스가 이대로 가다가는 국가경쟁력이라는 개념이 없어질 것 같다, 영원히 유럽의 병자로 남겠다는 문제를 제기하면서 개혁에 드라이브를 걸었기 때문에 성공을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사회당 정부 내에서 그런 문제 제기를 꾸준히 해 온 사람이 자기의 본색 을 드러내면서 제3의 길(앙 마르슈 창당)을 내밀었기 때문에 진정성을 모든 국민이 프랑스 경제를 경쟁력 있게 굴러가게 하기 위해서는 어떤 자세를 갖고 경제 개혁을 해야 된다라는 생각을 이해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마크롱 대통령은 사 회당 정부, 즉 올랑드 정부 당시 경제부 장관을 지냈는데, 프 랑스 성장과 경쟁력 제고를 위한 법안을 제의하는 등 프랑스 경제의 문제와 개혁 필요성을 꾸준하게 제기해왔다.
엘리트 경제관료로서의 경험·전문성
엘리트 경제관료로서의 전문성과 경험도 프랑스경제 개혁을 성공으로 이끈 요인이다. 마크롱은 재무부 산하의 금융조사관을 지내고, 유대인계통 투자은행인 로스차일드에 임원 으로 스카우트된 후 프랑스 최고 수준의 인수합병 전문가로 일했다. 그러다 올랑드 정부 시절에는 자카탈리 전 EBRD(유 럽부흥개발은행) 총재, 도미니크 스트로스카 전 IMF(국제통 화기금) 총재 등의 추천을 받아 경제부 장관을 지냈다.
김 교수는 “핵심적인 경제 관료, 핵심적인 경제 현장에서 부딪히며 프랑스경제의 문제가 무엇이고, 어떻게 해야 경제성장이 이뤄질 수 있으며 국가경쟁력 제고를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한다는 경험을 엄청나게 쌓은 것”이라며 “이런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경제 개혁 조치를 할 때 남을 설득할 수 있는 능력이 나오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경제적 상생의 논리라고 하는 것이 하나로 통합 될 필요가 있는데, 마크롱은 사회주의 정당에서 컸던 사람이고, 좌파 정권인 올랑드 정부에서 경제장관을 지내며 우파정책을 제안했던 대표적인 사람이다. 우리가 복지국가 체제를 좀 놓고, 자본의 논리로 가지 않으면 프랑스경제가 견딜 수 없다는 것을 드디어 그것을 국민이 받아들인 것이다. 시대정신이 바뀌었다는 것을 국민이 안 것”이라면서 “프랑스의 시대정신이 바뀌었고, 그것을 국민이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의 상황에서 마크롱이라는 젊은 주자가 만나서 프랑스의 경제개혁이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랑데바(Grand Debat)…예고 없이 파업 현장 가 6시간 토론
다음은 ‘그랑데바’, 국가 대토론이다. 프랑스에는 토론하는 문화가 있는데, ‘그랑데바’는 마크롱 대통령이 막힌 국정을 타개하기 위해 종종 들고 나오는 것이다. 경제개혁 과정에서 ‘노란조끼’의 시위로 인한 위기 상황에서 마크롱 대통령은 석 달 간의 그랑데바를 통해 이들을 설득하고 위기 상황을 돌 파했으며 지지율 반등도 이뤄냈다.
홍 교수는 “마크롱 대통령은 사주와 노동자가 싸울 수도 있는 분위기의 파업현장에 예고 없이 찾아가 그들의 토론을 6시간 동안 아무 말 없이 듣고, 마지막에 ‘내가 여러분들을 위 해 할 수 있는 것을 꼭 실현하겠다’고 했다고 한다. 그렇게 3개월 동안 추진했던 그랑데바 시기에 노란조끼 시위도 잦아 들었다. 진정성을 느낀 것”이라며 “마크롱이 파업 현장가서 ‘그냥 데바를 했다’는 수준이 아니다. 프랑스 사람들은 말을 굉장히 세게 하기 때문에 그런 곳에서 6시간을 견디면서 얘기를 들었다는 것은 내가 쌍욕을 들어가면서도 상대방을 설득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몸에 밴, 맷집이 상당하다는 것”이 라고 평가했다.
김도훈 교수는 “프랑스의 디베이트 문화는 절충과 타협을 통한 설득의 중요성을 잘 보여준다. 우리가 규제개혁이나 (규제) 샌드박스. 신산업창출 등을 얘기할 때 ‘경제가 어떻게 좋아진다’만 강조해서는 상대방, 기존 이해관계자를 설득할 수 없다. 자신의 이익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고, 오히려 손해를 봐야 하기 때문”이라면서 “예를 들어 ‘타다’가 굉장히 혁신적이라는 것만 아무리 강조해봐야 택시업계가 원하는, 그들이 느끼는 두려움이 무엇이고, 그것을 해소하기 위해 어떤 것이 필 요한가에 대한 절충과 타협을 생각하지 않는다면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것과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마크롱이 그런 자세를 갖고 설득에 임하고, 그 사람들이 진정으로 뭘 원하는지, 어떤 조치들로 인해 일어나는 변화로 인해 내가 어떤 피해를 입을지 모르는데, 이것을 극복하려면 무엇이 필요한지를 듣고, 그것을 같이 할테니, 들어달라고 했기 때문에 설득할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철학있는 정치 지도자가 설득의 리더십 발휘해야
결국 마크롱 대통령이 경제개혁에 성공한데는 노동개혁, 법인세 인하 등 기업친화적 정책, 해외 투자유치를 위한 범정부 차원의 적극적인 홍보같은 정책적 측면보다 더 근본적인, 철학있는 정치 지도자가 정확하게 문제를 인식하고 설득의 리더십을 발휘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전문가들은 따라서 우리나라가 배우고 고민해야 할 것은 그들의 정책이 아니라 그들의 사회, 그들의 문화를 어떻게 우리 사회에 반영할지에 대한 것이라고 강조했다.
홍 교수는 “마크롱 정부는 지금 연금개혁을 두고 심각한 위기에 있는데, 우리나라도 마찬가지다. 공무원연금부터 시작해서 여러 가지 연금의 적자 수준이 어마어마할 텐데, 표 떨 어지니까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고 있다”며 “정치철학 공부를 한 사람이 지도자로 나와서 국민과 소통을 했을 때 설득할 수 있는 사회적 기반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숫자놀음으로는 국민 설득이 안 되고, 이대로 가면 20년 후에 다 망한다. 공감할 수 있는 스피치를 해야 한다. 마크롱은 그것을 했다” 고 말했다.
이어 “한국이 진보와 보수로 분열된 수준이 ‘드레퓌스 사건’ 이 있었던 프랑스와 느낌이 비슷하다. 대화가 안 될 수준까지 온 것”이라면서 “보수정권이 가졌던 소위 ‘꼴통스러운 아집’, 지금 정부가 갖고 있는 ‘운동권 논리’, 이 두 가지가 어떤 형태로든 시대수준으로 바뀌지 않으면 한국경제에 돌파구가 없지 않나 생각한다. 남의 이야기를 듣고 설득하고, 논리적으로 남을 설복시킬 수 있는 리더십이, 소통의 리더십이 몸에 안 밴 사람들은 정치를 그만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드레퓌스 사건’은 19세기 말 유대인 대위였던 드레퓌스의 간첩혐의를 둘러싼 정치적 사건으로, 조작된 증거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분열때문에 사실이 은폐되는 등 프랑스 혁명 이후의 프랑스 공화정 체제를 위기에 빠뜨렸다. 또한 “근대성(모더니티), 오늘날의 관점에서는 효율성과 평등의 문제로 해석할 수 있겠고, 그 기반이 경제적 문제인데, 우리나라는 우리에게 적합한 근대성을 어떻게 정착시켜야 하는지를 고민하지 않았다. 늘 체제만 얘기하고, 남들이 어떻게 하니까 우리는 그것을 따라면 되지 않겠느냐는 식으로 얘기했다”면서 “디지털 경제라고 하는 것이 단순히 산업·경제의 구조적인 인프라를 바꾸는 수준이 아니고, 새로운 형태, 이른바 ‘포스트 모더니즘’를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세계적 인물결”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2013년 일본은 그동안 거의 150년 동안 유지했던 교육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바꿔 국제 바칼로레아(International Baccalaureate, IB) 형태로 학문체계와 입시제도를 바꿨다”며 “우리나라 경제하는 분이나 정치하는 분들은 이 문제를 단순히 기술과학의 변화 정도로만 생각하고 있다. 포스트 모더니즘, 그것은 정치·경제와 우리의 사고방식, 생활의 패턴을 바꿔야 할 때가 오는 것이다. 이를 국민에게 설득하고 공감대를 만들어 새로운 형태의 임금구조, 경제구조, 교육제도를 완성하는 것이 앞으로 한국 사회가 해결해야 하는 과제”라고 강조했다.
IB는 1968년 스위스 국제학교협회와 유네스코가 협력해 설립한 독립적 비영리국제기구가 주관하는 3~19세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초·중등 교육과정이다. 영어는 물론 프랑스어, 스페인어 등으로 교육돼 국제교육과정의 표준으로 인식된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