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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기술·정보


시대적 흐름이라는 ‘직무급’, 노동시장 이중구조·양극화 해결책 될까

… 산별교섭 등 초기업 단위 단체교섭 촉진은?

 

지난 2월17일 제24차 전체회의를 마지막으로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금융산업위원회(위원장 김유선, 이하 금융산업위)가 1년 3개월여간의 논의를 종료했다. 하지만 결국 연공성 완화·직무급 도입 등 ‘임금결정방식 개선’에 있어 노사 양측의 입장차를 좁히지 못하고, 최종 합의에는 이르지 못했다. 합의에 이르지 못할 경우 공익위원 권고문을 내기도 하지만 이도 내지 않기로 했다. 공익위원들은 1월28일 회의에서 노사의 자율적 협력을 강조하는 합의문의 취지를 감안할 때 권고문을 채택하지 않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쪽으로 의견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다.

 

최종 합의에 실패한 ‘임금결정방식 개선’과 관련해 합의문 초안에는 임금인상은 저임금일수록 높은 인상률을 가져가는 하후상박형, 점진적 연공성 완화 및 직무기반 임금비중 확대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다. 김유선 위원장은 “대표적 좋은 일자리로서 금융 산업이 고용시장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만큼 의견 조율을 위해 많은 노력을 했지만, 최종적으로 합의에 도달하지 못했다”면서도 “그럼에도 이번 논의는 ‘금융 산업의 발전’과 ‘양질의 일자리 유지·창출’ 과제 중 임금결정방식 개선을 제외한 나머지 내용에 대해서 이견을 좁혀낸 것만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이기까지 한 공공부문 임금체계 개편(직무급 도입)이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고용노동부는 1월13일 민간에 ‘직무 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를 내놨다.

 

공공부문 도입 난항 속, 민간에 직무급 도입 확산 지원하는 정부

 

고용노동부는 1월13일 ‘직무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 책자를 발간했다. 정부는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는 임금격차 및 양극화 완화와 세대 간 임금의 공정성 확보 등을 위한 불가피한 시대적 흐름이라며, 노사가 자율적으로 임금의 과도한 연공성을 줄이고 직무와 능력 중심의 공정한 임금체계로 개편해 나갈 수 있도록 지원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밝혔다.

 

해당 자료는 대표적인 직무·능력 중심 임금체계인 직무급을 중심으로 임금구성을 단순화하는 것부터 직무가치에 기반을 둔 인사관리체계 도입을 위한 직무분석·평가 방법, 새롭게 개발한 제조업 범용 직무평가도구 활용방법 등이 포함됐다.

 

임서정 고용노동부 차관은 이날 브리핑을 통해 “호봉제는 과거 고도성장기에 노동자들의 기업에 대한 소속감을 높이고 장기근속을 통한 숙련 형성에 기여하는 등 긍정적인 역할을 수행했으며, 기업들 또한 성장 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호봉 상승으로 인해 임금이 자동으로 오르더라도 이를 감당할 수 있었다”면서 “그러나 경제성장률이 약 연 3% 미만인 저성장이 지속되고 인구구조의 고령화가 급속도로 진행되면서 호봉제는 그 과도한 연공성으로 인해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키고 있다”고 밝혔다.

 

 

임 차관은 “노동시장 환경 변화에 따라, 많은 기업이 과도한 연공급제는 지속되기 어렵다고 인식하고 직무·능력 등에 기반을 둔 임금체계로의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면서 “또 기업들이 저마다 처한 여건과 특성을 등을 고려해 호봉급 하에서 연공성을 완화하거나, 기존 임금체계에 직무급·직능급·역할급적 요소를 가미하는 등 다양한 노력이 진행 중”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앞으로 정부는 직무평가도구 등 관련 인프라를 계속 확충하는 한편, NCS와의 연계를 통해 직무 관련 정보를 촘촘히 구축하는 방안을 모색하겠다”면서 “기존 임금·평가체계 개선 컨설팅을 계속 확대해 가면서 올해는 직무중심 인사관리체계 도입 지원사업을 신설해 인사관리 전반에 대해 보다 내실 있는 지원이 이뤄질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노동계 즉각 반발, “공무원부터”

 

문재인 정부는 지난 2017년 10월 ‘일자리 중심 경제’ 실현을 위해 ‘일자리정책 5년 로드맵’을 제시한 바 있다. 해당 로드맵에는 공공기관 임금체계를 직무중심 체계로 개편하겠다는 내용을 담았다. 이에 ‘2019년 경제정책방향’에서는 공공기관의 임금체계를 ‘연공급’ 위주에서 ‘직무급’ 중심으로 전환하겠다는 구체적 계획을 밝혔다. 하지만 여전히 그 성과는 미비하다. 공공·금융 부분에서 조차 도입에 난항을 겪고 있는 가운데 정부의 시선이 바로 민간으로 향하면서 노동계는 즉각 반발하고 나섰다.

 

민주노총은 “해당 자료는 정부의 가이드라인 성격이 매우 강하다”라며 “일방적인 임금체계 개편을 강요할 것이 아니라, 임금체계 개선을 위한 노정협의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한국노총도 “우리나라에서 임금의 연공성이 가장 심한 곳은 민간 제조업 대공장이 아니라 공무원 집단”이라며 “민간으로의 확산을 우선 추진하기보다 공무원부터 먼저 직무능력 임금체계를 시범 실시한 후 사업체로의 확산을 유도하는 것이 절차상 바람직할 것”이라고 지원안 철회를 촉구했다.

 

임금체계 개편 핵심 ‘직무급’

 

2019년 사업체노동력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호봉급 임금체계를 운영하는 사업장이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추세이기는 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 사업체들의 주된 임금체계는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자동으로 인상되는 연공급적 성격의 호봉제라 할 수 있다. 100인 이상 사업체를 기준으로 지난해 58.7%의 기업이 호봉 급을 운영하고 있다.

 

고용노동부는 ▲고령화와 함께 기업부담 증가에 따른 청년채용 여력 감소 ▲일의 내용이나 능력보다 인적속성 중시에 따른 정규직·비정규직 간 임금격차 확대 ▲‘동일노동 동일임금’ 취지에 반하거나 임금의 공정성 문제 초래 등을 연공급적 호봉제의 문제로 지적했다. 호봉 급에서는 매년 물가인상률 등을 반영한 일률적 임금인상(base-up) 외에도 근속년수에 따른 연봉등급 인상(step-up)이 함께 이루어져 연공성이 강하게 나타난다.

 

그럼 정부가 대안으로 제시하는 직무급이 이에 대한 해결책이 될 수 있을까. 먼저 직무급은 임금의 주된 부분이 난이도, 기술 등 직무의 특성에 따라 결정되는 임금체계를 말한다. 미국을 포함 서구의 가장 대표적인 임금체계이며 직무에 따라 임금이 결정되기 때문에 원칙적으로 누가 그 직무를 수행하든 동일한 임금을 받는다. 직무급은 과거 산업화 초기의 소품종 대량생산 체제 하에서 생산량과 질에 따라서 임금이 결정되는 개수급을 대체하면서 형성된 임금체계다. 노동자들이 수행하는 각각의 직무에 대해 직무분석 및 직무평가 과정을 거쳐 그 직무의 가치에 상응하는 임금을 매칭시키는 방식이 전형적이다.

 

하지만 시장수요의 변화, 작업장 혁신에 따른 유연한 작업체계, 직무능력·성과 등 노동자의 속인적 특성의 중요성 등에 따라 순수한 직무급 보다는 직무능력이나 성과 등을 가미한 변형된 직무급이 늘어나고 있다.

 

직무급, 노동시장 이중구조·양극화 해소할까

“반드시 노사 공동으로 모든 과정 추진해야”

“현 상황에서 기업규모 간 임금수준 격차 더 키울 수 있어”

 

이론적으로는 직무평가에 따라 직무의 상대적 가치를 정하고, 등급을 매겨 임금수준을 정하므로 가능성은 있어 보인다. 그럼 직무급으로의 전환이 정규직과 비정규직,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 임금격차를 해결하는 데까지 나아갈 수 있을까.

 

박용철 한국노동사회연구소(KLSI) 선임연구위원은 지난해 6월24일 발표한 ‘동일노동 동일임금 실현을 위한 임금체계 모색’ 이슈 페이퍼를 통해 “임금체계를 통해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완전히 해결하기는 어렵겠지만 실마리는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봤다. 다만 박용철 선임연구위원은 도입과정에서 노사 협력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박 선임연구위원은 “직무급체계를 도입하는데 있어 필수적으로 거쳐야 하는 직무평가 과정이 중요하다”면서 “특히 평가결과의 수용성을 확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것은 반드시 노사 공동으로 모든 과정을 추진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노동계는 노동시장 이중구조와 양극화의 우선적 책임은 단순 임금체계 연공급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한국노총은 1월13일 입장발표를 통해 “정부의 이번 임금체계 확산 지원 안에는 임금체계 개편의 전제인 대등한 노사관계와 노동자 대표제도의 미진함에 대한 개선책이 제시되지 않아 오히려 사용자 주도의 임금삭감 수단으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를 표명했다.

 

정부가 지원 안에서 산업현장의 노사가 충분한 협의를 통해 ‘자율적’ 개편을 강조했지만, 오히려 노동조합이 조직되지 않거나 대항력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중소 제조·서비스업 사업장에 우선적으로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에 한국노총은 반대로 기업규모 간 임금수준 격차를 더 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기업별 단체교섭 위주인 한국,

‘직무급’ 전환해도 기업 간 임금격차는 마찬가지

해결책 ‘산업단위 단체교섭’ … 文 대선 공약이었지만 구체적 정책 추진 안돼

 

정부는 호봉제가 ‘동일노동 동일임금’ 취지에도 반한다고 하면서 직무급을 제시했지만, 개별 사업장을 벗어나면 직무급도 이에 반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나라 상황의 경우 회사마다 지불능력, 노조의 영향력에 따라 임금이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무슨 일을 하느냐 보다 어디에 다니느냐에 따라 임금수준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노동계가 임금격차, 양극화는 직무급으로의 임금체계 개편만으로 해소될 수 없다고 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독일처럼 ‘산업단위 단체교섭’으로 나아간다면 해결책이 될 수 있다. 직무에 따른 임금수준에 대해 사회적 합의가 전제되기 때문이다. 사실 문재인 대통령이 임금체계 개편 등과 함께 ‘산별교섭 등 초기업단위 단체교섭 촉진’이 공약으로 명시돼 있었던 것으로 봤을 때 현 정부도 문제인식은 가지고 있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직무급 도입 등 임금체계 개편과 다르게 해당 공약은 구체적 정책으로 추진되고 있지 못하다. 이는 한국노동연구원의 고용노동브리프 ‘2019년 노사관계 평가 및 2020년 전망’도 지적하고 있다.

 

보고서를 작성한 이정희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은 “노동기본권의 확장과 중앙 집중화되고 조정기제가 발현되는 단체교섭 제도가 노동시장 내 격차 완화에 긍정적 영향을 주는 만큼 공약의 실천을 위한 노력이 경주될 필요가 있다”면서 “노사 주체들도 노사관계 형성 발전을 위한 실천도 더욱 구체화돼야 한다”고 밝혔다.

 

 

임금체계 개편 논의 벌써 수년째

 

일의 가치나 생산성이 임금에 반영되지 않고, 단지 근속연수에 따라 임금이 높아지는 호봉제에 대한 문제제기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정년연장과 임금피크제 도입 과정에서부터, 주52시간제 등 노동시간 단축 논의에서도 빠지지 않고 임금체계 개편은 등장해 왔다. 하지만 각자의 기득권 속에 해결책은 보이지 않는다. 갑작스레 민간에 ‘직무 중심 인사관리 따라잡기’를 발간한 정부도 ‘고육지책’이 아니었을까.

 

가속화되는 고령화 속에 또다시 정년연장은 다시 수면위로 떠오르고, 호봉제가 작동할 수 있었던 고도성장기는 끝난 지 오래다. 노사정 모두에게 남은 시간은 별로 없어 보인다. 하루 빨리 상생의 길을 찾아야 할 시기인 것 같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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