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중국인민은행은 지난 10월 12일 광둥성 션젼시 뤄호구에서 5만 명의 주민들에게 1인당 200위안을 나눠 주었다. 물론 그냥 이유 없이 준 것은 아니었다. 공모와 추첨을 거쳐 디지털 위안화를 배포하고 실제 사용토록 한 것이다. 이번 공모에는 총 191만 4,000명이 신청해 약 38:1의 높은 경쟁률을 기록할 정도로 높은 관심을 받았다. 당첨자들은 먼저 스마트폰에 디지털 위안화 앱을 다운받은 다음 개별 은행의 디지털지갑을 설치해 200위안의 디지털 위안화를 받았다. 디지털 위안화는 대형마트, 음식점, 약국 등 3,389개 상점에서 현금과 마찬가지로 사용할 수 있다.
중국의 발 빠른 디지털 위안화 실험
200위안을 디지털화폐로 나눠준 것은 중국인민은행이 시행하고 있는 디지털화폐 테스트였다. 지난해 말부터 인민은행은 션젼, 쑤저우, 청두, 슝안특구 등 2022년 북경 동계올림픽 개최 현장 등을 중심으로 디지털화폐 발행을 위한 ‘비공개 파일럿테스트’를 진행하며 공식 발행을 위한 준비를 꾸준히 진행해 왔다. 지난 5월 이강(易纲) 인민은행 총재가 디지털화폐 발행을 위한 기본적인 설계 및 테스트가 완료되었다고 밝힌 바 있으며, 8월에는 상무부에서 광동·홍콩·마카오, 베이징·천진·허베이, 양쯔강 삼각주
등에서 디지털화폐 시범 사용 계획을 발표했다.
아울러 9월에는 판이페이 부총재가 현재 개발 중인 디지털화폐의 명칭을 디지털 위안화로 명명하고 법정통화로서의 의의와 성격을 명확히 했다. 이처럼 중국은 법정통화로서 디지털화폐 도입을 예상보다 빠르게 진행하고 있다. 지난해 말 인민은행은 4대 국영은행인 공상은행, 농업은행, 중국은행, 건설은행과 3대 통신사 중국이동, 중국전신, 중국연통 등과 공동으로 디지털 위안화의 결제 기능 테스트에도 들어갔다.
중앙은행 발행, 현금이나 마찬가지
디지털 위안화는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법정화폐로서 현금이면서 전자결제 기능을 결합한 전자판 위안화 현금이다. 디지털 위안화는 위안화 지폐나 동전이 아닌 디지털화된 위안화로서 기존의 위안화 지폐나 동전 등을 대체하는 것이 1차 목표다. 또 국가신용을 담보로 현금과 같은 효력을 가져, 국가신용과 법적 상환성이 없는 비트코인과 같은 암호화폐와는 다르다. 디지털 위안화는 현금처럼 이자를 지불하지 않으며 소액, 소매, 고빈도 업무용으로 쓸 수 있어 지폐 사용과 큰 차이가 없다.
인민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 위안화는 국가신용으로 발행해 현금과 같은 법적 효력이 있다. 또 법정화폐로 강제 통용력이 있어 모든 거래 참가자는 디지털 위안화를 이용한 지급 결제 및 채무변제를 거부할 수 없다. 아울러 디지털 위안화는 스마트폰에 디지털 위안화 지갑을 설치하면 이체나 결제가 가능, 현금처럼 사용할 수 있어 별도의 은행 계좌가 필요 없다는 장점이 있다.
은행 지점 등이 없는 지역에서 사용할 수 있어 금융 포용성이 증대되고, 금융이 발달하지 않은 지역에 정부 보조금 지급 등이 용이하다. 특히 디지털 위안화는 전자지갑이 설치된 휴대전화가 인터넷 등 네트워크에 연결되지 않아도 전원만 켜져 있으면 근거리 소통 방식으로 사용이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디지털 위안화는 발행 비용이 저렴하다는 장점도 있다. 지폐와 동전의 발행, 인쇄, 저장, 유통 등은 각 단계에서 비용이 발생하고, 위조방지 기술도 필요하다. 하지만 디지털 위안화는 이런 비용이 발생하지 않는다. 현금이 갖는 익명성도 디지털 위안화는 가지고 있다.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하고 있는 디지털 위안화는 현금처럼 익명성이 보장된다. 다만 테러, 탈세, 자금세탁 등의 경우 자금흐름을 추적할 수 있도록 설계돼 익명성은 제한적이다.
위안화 세계화 위한 포석
디지털 위안화는 기존의 제3자 결제방식인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영향력을 축소하고, 통화에 대한 중앙은행의 독점 권한 강화에 기여한다는 의미가 있다. 디지털 위안화는 법정화폐이면서 전자결제가 가능하므로 기존의 네트워크에 의존하는 알리페이와 위챗페이의 결제 비중 감소 예상되는 이유다. 특히 중국 정부가 디지털 위안화에 개발과 정착에 속도를 내는 배경에는 미국이 있다.
위안화의 국제화를 통해 미국의 중국에 대한 금융제재 가능성에 대응하기 위해서다. 디지털이라는 성격은 물리적 제한이 없어 중국 밖에서도 사용이 쉽다. 이를 이용해 석유, 원자재 등 주요 수입 상품이나 일대일로 사업 등에서 글로벌 지급 결제 통화로 활용될 가능성이 크다. 중국이 위안화의 국제 화폐로서의 위상을 세우기 위해 2007년부터 노력해 왔고, 그 결과 위안화는 국제통화기금(IMF)의 특별인출 3대 통화가됐다. 또 상하이에 위안화로 계산하는 석유 선물 시장을 설립했다.
물론 위안화의 국제화가 진행되더라도 달러화가 가진 기축통화의 지위에는 단기간에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국제무역 결제 통화의 비중은 미국 달러화가 40% 이상이고, 위안화는 2% 미만으로 유로화, 파운드화, 엔화에 이어 세계 5위에 불과하다. 외환보유액 통화의 비중 역시 미국 달러가 60%를 넘고, 위안화는 2%다.
이처럼 중국이 디지털화폐 발행과 정착에 속도를 내고 있지만, 부작용 우려도 여전히 존재한다. 디지털화폐 확산은 상대적으로 디지털 기기 등에 취약한 노령층과 시골 지역 등 일부 계층 및 지역에서의 금융 소외 현상을 심화하는 부작용도 예상된다, 또 아무리 블록체인으로 보안을 강화했다고 하더라도 거래정보 등 개인정보 등에 대
한 해킹 가능성이 있다.
아울러 법정통화인 만큼 인플레이션 유발과 사용자의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는 점도 우려로 제기된다. 디지털화폐가 현금과 등가로 교환되므로 통화량(M0) 변동이 없을 것이라고 하지만, 물리적 제한이 없는 디지털로 유통되기 때문에 통화량이 증가할 우려가 있다. 또 기존의 현금에 비해 디지털화폐는 유통 속도가 빨라질 가능성이있어 결국 인플레이션을 유발할 수 있다. 여기에 디지털화폐를 사용하는 개인과 법인의 거래 내역을 쉽게 파악할 수 있어 익명성이 보장되지 않고 프라이버시 침해와 통제도 가능하다.
한은, 도입은 검토…“서두를 일은 아니다”
한국은행은 아직 디지털화폐 도입에 대한 검토 작업에 착수한 상태다. 한국은행은 지난 4월 “최근 지급 결제 분야의 기술 혁신이 빠르게 이뤄지고 있으며 민간부문의시장 확장성도 예견하기 어려운 상황”이라며 “한국은행도 현시점에서의 디지털화폐 발행 필요성과는 별도로 대내외 지급 결제 환경 변화에 선제적으로 대응하기 위해 디지털화폐 도입에 따른 기술적, 법률적 필요사항을 사전적으로 검토하는 한편, 파일럿 시스템 구축 및 테스트를 진행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국은행은 “여전히 존재하는 현금 수요, 경쟁적 지급 서비스 시장, 높은 금융포용 수준 등을 고려할 때 가까운 시일 내에 디지털화폐를 발행할 필요성은 크지 않다”면서도 “대내외 여건이 크게 변화할 경우 이에 신속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다”라고 했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디지털화폐 도입은 그렇게 서두를 일이 아니라고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이 총재는 지난 10월 16일 국회에서 열린 한은 국정감사에서 “우리나라에서 가까운 장래에 CBDC(중앙은행이 발행하는 디지털화폐) 발행을 서둘러야 할 상황은 오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이어 “각국 중앙은행이 최근 CBDC 발행을 서두르는 이유는 민간에서 디지털화폐를 출연할 경우 여러 가지 문제가 야기될 수 있기 때문에, 그에 따라 통화 당국이 이를 대체하기 위한 차원”이라고 말했다.
이 총재는 앞선 중국이 디지털 위안화 발행에 속도를 내는 것에 대해선 “중국은 지급 결제 제도가 우리나라만큼 발전되지 않아서 위챗페이나 알리페이 등이 전체 지급 결
제의 90% 이상을 담당하고 있다”라며 “이에 따른 문제가 많은 것이 CBDC에 속도를 내는 것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했다.
다만 이 총재는 “우리나라는 지급결제제도가 워낙 잘 갖춰져 있어서 CBDC가 빨리 상용화할 단계는 아니다”라면서도 ”하지만 이와 별개로 준비는 빠르게 하고 있다. 내년에 파일럿테스트를 할 계획이고 다른 나라 중앙은행의 연구 및 개발 속도에 비추어 뒤처지지 않는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MeCONOMY magazine November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