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WHO, 지난 5월 ‘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질병 분류
- 우리나라는 2026년에야 현장 적용 가능
- 게임업계…“중독 부담금 부과·게임산업 위축 우려” 강력 반발
- 정부, 규제 개혁해 게임업계 우려 불식시킬 필요
<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이제 ‘게임중독’은 질병이 됐다. 지난 5월 세계보건기구 (World Health Organization, WHO)는 스위스 제네 바에서 총회를 열고 게임중독, 즉 ‘게임이용 장애(Gaming disorder)’ 질병코드 ‘6C51’을 새롭게 추가한 ‘국제질병분 류 11번째 개정판(The 11th Revision of the International Classification of Diseases, 이하 ICD-11)’ 발행을 의결했다. ICD-11은 게임이용 장애를 ①게임이용 시간이나 강도 등에 대한 통제력이 손상되고 ②다른 관심사나 일상 행위보다 게 임에 우선순위를 부여하고 ③부정적인 결과가 발생함에도 게임을 계속하거나 더 하는 행동 패턴으로서 그 결과가 가족이나 사회 등에 큰 손상을 초래할 수 있을 만큼 심각하고, 최소 12개월간 증상이 나타나는 행동 패턴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WHO의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 의결 소식은 즉각 세계적인 게임 산업 강국인 우리나라에 팽팽한 의견 대립을 가져 왔다. 게임산업 위축과 함께, 일각에선 게임중독이 질병코드로 등록될 경우 게임업체로부터 부담금 징수나 수수료 부과 등이 가능하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게임은 이미 문화이자 핵심 산업
게임은 일상적으로 즐기는 하나의 놀이문화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이 올해 2월 발간한 ‘2018 게임 과몰입 종합 실태조사’에서 초등학교 4~6학년 및 중·고등학교 학생들을 대상으 로 조사한 결과 게임을 하지 않는 청소년이 23.1%에 불과했다. 게임을 하는 학생들 중 게임선용군은 17.7%, 일반사용자 군이 57.4%이었다. 주목할 부분은 ‘게임이용 장애’로 분류될 확률이 높은 과몰입군과 과몰입위험군은 각각 0.3%, 1.5%였다.
게임은 산업적으로도 우리 경제에서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8 대한민국 게임백서’에 따르면 2017년 국내 게임 시장 규모는 13조1,423억원으로, 2016년 10조 8,945억원보다 20.6% 성장했다. 국내 게임 산업은 2007년 이후 2012년까지 지속적인 성장률을 보이다가, 2013년에 0.3% 감소하면서 다소 주춤 했지만, 2014년에 반등세를 보이며 2017년에는 대폭 성장했다. 2017년 국내 게임 산업 수출액은 전년 대비 80.7%나 증가한 59억2,300만 달러였다. 우리 돈으로 약 6조6,980억원 규모다. 수입 역시 전년 대 비 78.4% 증가한 2억6,291만 달러, 우리 돈 2,973 억원을 기록했다.
WHO 의결 과정에서도 찬반 ‘팽팽’
‘게임이용 장애’가 문제가 되기 시작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지난 2013년 미국정신의학협회가 ‘정신질환 진단 및 통계 편람’에 ‘인터넷 게임이용 장애(Internet gaming disorder)’를 ‘추가 연구가 필요한 항목(Conditions for further study)’으로 선정한 것이 사실상 시작이다. 이후 WHO도 2014년부터 매년 ‘인터넷, 컴퓨터, 스마트폰 그리고 유사 전자 기기의 과다 사용’ 관련 회의를 열었다. 하지만 매해 회의를 거듭할수록 게임이용 장애의 질병코드화를 두고 찬반 논쟁이 커졌다. 2014년 회의에서는 게임이용 장애는 여러 중독적 행위들 중 하나로만 검토됐지만, 점차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 드화 제안까지 나오게 된 것이다.
질병코드화를 반대하는 입장에서는 질병코드화 참고 연구 들의 신뢰도가 높지 않다는 점과 행위중독의 정의가 물질중 독의 정의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장애의 증 상과 평가에 대한 합의가 충분하지 않다는 점을 지적했다. 찬성 입장에서는 게임이용 장애와 같은 행위중독은 점점 게 임에만 몰두하는 것(내성)과 안 하면 괴로운 것(금단현상)을 이미 포함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가볍게 즐기는 것이 아니라 일상생활이 불가능할 정도로 심각한 심리적 고통과 장애 를 유발하는 행동을 병리화 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게임 이용 장애를 질병으로 인정해 예방과 치료에 적극 나설 수 있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현장 적용은 2026년에서야 가능
논란 끝에 질병코드화를 의결한 WHO도 게임이용 장애가 소수에만 해당한다고 설명하고 있다. 하지만 소수라도 이들의 육체적·정신적 건강, 사회적 기능에 변화가 있다면 치료 프로그램이 필요하다고 강조하고 있다. 또 WHO는 질병코드화를 계기로 게임이용 장애를 인지하고 관리하는 것에 대한 국제적 연구가 활성화될 것이라 내다보고 있다.
WHO는 게임을 직업을 하는 사람들도 게임이용 장애로 봐야 하느냐 에 대해선 디지털 또는 비디오 게임 활동에 종사하는 사람 들의 소수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하지만 게임을 과하게 하 는 일반적인 사람들은 게임 활동에 소비하는 시간, 특히 다른 일상 활동을 배제하는 경우와 신체적 또는 정신적 건강 및 사회적 기능의 변화에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는 게임이용 장애 실태 파악, 예방 및 치료에 기여할 수 있고, 질병으로 인정되는 만큼 건강 보험 적용이 가능해져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아동·청소년들이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중요한 것은 게임이용 장애가 당장 질병으로 인정되는 점이 아니라는 것 이다. WHO 회원국인 우리나라는 ICD를 기반으로 질병을 분류하고 있으므로, 통계청이 5년마다 개정하고 있는 ‘한국 표준질병·사인분류(KCD)’에 ICD-11 내용을 반영해야 한다. ICD-11의 효력은 2022년부터 발생하는데 통계청은 2025년 KCD-8에 반영할 수 있고, 2026년부터 현장에서 실제 적용 가능하다고 밝혔다. 정부도 WHO의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 의결 직후 관련부처 차관회의를 열고 민·관 협의체를 구성해 각계 의견을 충분히 수렴하기로 했다. 아직 충분히 논의 할 시간과 여유가 많다.
게임업계 반발…“중독 부담금 부과할 우려”
게임이용 장애의 ‘질병화’는 2026년에나 현실화되지만 벌써 부터 찬반논쟁이 뜨겁다. 특히 게임업계는 크게 반발하고 있다. 한국게임산업협회는 WHO의 질병코드화는 ‘보건의료 분야 표준화 협력센터’를 통해 질병코드 삭제 및 수정이 가능하다고 보고 있다. 그리고 통계청의 KCD 등재를 막겠다는 계획도 밝혔다. 아울러 협회는 WHO 의결은 강제 사항이 아니라 권유 사항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게임 관련 학회와 공공기관, 대학 등 91개 단체가 모인 ‘게임 이용 장애 질병코드 반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도 꾸려졌다. 특히 공대위는 질병코드 등록에 따른 중독세 부과 가능성을 우려했다. 질병코드가 도입되면 게임업체로부터 부담금 징수나 수수료 부과 등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현행 부담금관리기본법과 사행산업통합감독위원회법을 종합해 보면 카지노업, 경마, 경륜·경정, 복권 등의 사행산업과 사행성 게임물 서비스 등의 불법사행산업으로 인한 중독 및 도박 문제의 예방·치유와 센터의 운영을 위해 관련 사업자의 연간 순매출액 의 0.5% 이하 범위에서 부담금을 부과·징수할 수 있다.
게임이 ‘중독’, ‘질병’과 엮이면 부담금은 언제든지 부과할 수 있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유럽,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남아공, 브라질 등 전 세계 게임산업단체도 게임이용 장애의 질병 분류 결정 재고를 촉구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들은 “WHO가 학계의 동의 없이 결론에 도달한 것에 대 해 우려하고 있다”며 “이번 조치는 막대한 영향력을 가진 결과가 되거나 의도치 않은 결과가 될 수도 있으며, 실질적으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위해를 가져올 수도 있다”고 했다. 이어 “전 세계 게임업계는 각종 정보 및 도구를 제공함으로 써 건전한 게임 이용을 장려하고 있다”며 “이를 통해 전 세계 수십억명의 게임 이용자들이 건강하게 게임을 즐기고 일상을 풍요롭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고 강조했다. 또 “안전하고 합리적인 게임 이용은 우리 삶에 좋은 영향을 미치는 다른 가치들과 동일하게 절제와 올바른 균형을 찾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중독 부담금 부과와 함께 게임이 질병이 될 수 있다는 시각이 생기면서 결국 게임 규제가 강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공존 한다. 이미 지난 19대 국회에서 추진됐던 ‘인터넷게임중독 치 유지원에 관한 법률’, ‘인터넷게임중독 예방에 관한 법률’, ‘중독 예방·관리 및 치료를 위한 법률’은 게임이용시간 제한, 내 용규제 강화, 예방교육 실시, 아이템거래 금지, 부담금 징수 등 각종 규제 강화 방안을 담고 있었다.
게임규제가 실제로 강화된다면 게임산업의 위축은 피하기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지난해 12월 한국콘텐츠진흥원의 연구보고서는 질병코드화 실행 이후 3년간 총합 최소 약 5조 1,000억원에서 최대 11조3,500억원의 산업 위축 효과가 있을 것으로 추정했다. 이는 셧다운제의 경제적 영향에 비해 약 4배 이상의 큰 규모다. 보고서는 “게임과 몰입 질병 코드화가 게임산업에 미칠 것으로 예상되는 부정적 효과는 기존 다른 정책들에 비해서 상당히 큰 수중의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분석했다.
질병코드화 앞에 놓인 과제
게임이용 장애의 질병코드화 여부를 논의할 시간과 여유가 충분히 있는 만큼 국회와 정부의 적극적인 논의가 필요하다. 이와 관련해 국회입법조사처는 지난 6월 ‘WHO의 게임이용 장애 질병코드화 현황 및 과제‘라는 보고서를 통해 “정부는 게임업계와 규제 개혁에 나서 게임업계의 우려가 불식되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며 “아울러 이러한 노력이 지속되도록 국회의 관심이 어느 때보다 필요한 시점”이라고 제언했다.
이 보고서는 먼저 질병코드화와 게임산업 발전 양립이 불가능하지 않다고 했다. 보고서는 “앞으로 대응을 어떻게 하는 가에 따라 둘은 함께 갈 수도 있다는 인식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며 “질병코드화는 게임에 병적으로 몰입하는 소수 이용자들이 겪고 있는 어려움을 해결하고자 하는 것이다. 향후 게임에 대한 편견이 심화되는 것을 막고 불필요한 규제 강화를 하지 않는다면, 의료적 도움을 필요로 하는 소수 이용자 를 돕겠다는 질병코드화에 반대할 이유는 찾기 어려울 것” 이라고 강조했다.
또 “보건 의료계가 게임 이용 장애를 정확히 진단하고 치료할 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며 “다종다 양한 게임의 특성을 확실히 반영해 지침을 마련해야 한다”고 했다. 즉 정상적인 게임 이용을 비정상적인 게임이용 장애로 간주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하는 것이다. 일시적인 게임 과몰입 이용자를 게임이용 장애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특히 입법조사처는 정부와 게임업계가 함께 규제 개혁에 나설 것을 촉구했다. 입법조사처는 보고서에서 “게임업계가 자율 규제 등을 통해 자정 노력을 이어간다는 전제하에,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해야 한다”며 대표적 규제로 결제한 도제, 강제적 셧다운제를 예로 들었다. 보고서는 “PC 온라인 게임 결제한도제의 경우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게임물 등급 분류와 연결되어 일종의 ‘그림자 규제’로 작동하고 있다”며 “결제한도제를 시작으로 강제 셧다운제까지 재검토한다면 게임업계의 우려는 어느 정도 불식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MeCONOMY magazine July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