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뭇 생명 살리는 ‘접화군생(接化群生)’ 정신

한국정신문화를 찾아서(2)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서기전(西紀前, 기원전) 24세기에 선포된 홍익인간 정신이 그후 어떻게 변화했을까. 무려 3,000년 훌쩍 넘긴 서기 9세기의 인물 최치원에 이르러서야 그 흔적을 찾을 수 있다. ‘서로 싸우지 말고 어울려서 하나 되라’는 홍익인간 정신은 신라대에 와서 뭇 생명을 살리는 ‘접화군생’의 생명사상으로 이어졌다. 21세기 오늘날에도 자연과 함께 상생하자는 접화군생의 풍류도 정신은 그저 소중하기만 하다. 삼국사기에 나오는 최치원의 <난랑비서>를 중심으로 생명사상을 알아본다.

 

학자들 간에 최치원의 <난랑비서>에 나오는 풍류도가 유불선삼교를 종합수용한 것이냐, 유불선 삼교 이전부터 있었던 우리 고유의 사상이냐를 놓고 결론을 내리지 못 하고 있다. 기자가 보기엔 인류 보편적 정신사적인 흐름으로 볼 때 우리의 고유사상으로 봐도 무리가 없을 듯하다. 홍익인
간 정신을 가진 동이 사람들이 후대로 이어오면서 고유한 정신사상이 없었을리 없다. 공자가 살고 싶다는 나라, 군자국으로 불린 나라에서 왕조를 바꾸고 타민족들이 섞이고 부침하였다고 해도 정치사회를 지탱하는 정신사상, 신념, 신앙이 없었을리 없다.

 

홍익인간 정신이 3,000여년이 흘러가는 사이에 좀 더 제도적, 관습적, 조직적체계로 발전했을 것이다. 홍익인간 정신은 부여와 고구려, 백제, 신라, 발해 등 각 나라마다 국가적 필요성과 지리적 위치와 씨·부족적 기질의 차이에 따라 조금씩 달랐을 것이다. 수당(隋唐)과 직접 전쟁을 치른 고구려는 기상과 용맹이 강조됐을 것이고, 신라는 화랑정신을 제도화하기도 했다.  최치원이 <난랑비서>에 언급한 풍류도는 비명의 주인공이 화랑이므로 화랑들의 정신사상과 관련돼 있을 것임은 틀림 없다. 그러나 ‘선사(仙史)’에 자세히 기록돼 있다고 밝히고는 풍류도에 대한 자세한 설명 없이 ‘접화군생’ 넉자만 기술했다. 그리고 풍류도는 유불선의 가르침을 포함하고 있다며 유불선을 이용해 풍류도를 설명하고 있다.

 

선사에 어떤 내용이 들어 있는지 알 수 없으나 풍류도는 유불선처럼 가르침이 경전으로 체계화돼 있지는 않았던 것이 아닐까 한다. 최치원과 같은 학자가 만약 체계화된 내용이 있었다면 유불선에 빗대어 설명하기 전에 풍류도 정신의 일단을 밝혔을 것이다. 따라서 풍류도의 실체를 밝히기 위해 빈약한 사료들과 비교분석 하고 근·현대 가설들을 끌어대어 억지로 상상력을 발휘할 필 요가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난랑비서>를 있는 그대로 보고, 빈약한 사료들이라도 긍정적으로 해석하면 될 것 같다.

 

홍익인간 정신이 실천적이었듯, 풍류도도 ‘접화군생’과 같은 근본적가치, 소박한 의례, 실천적인 내용의 강령 등이 거의 전부일지 모른다. 풍류도와 풍월도, 국선, 미륵선화 등 여러 호칭으로 나타난 것은 풍류도가 확립된 사상과 학파, 종교집 단으로 존재하지 않았음을 반증하는 것일 수 있다. 당시에는 한자를 쓸 수 있는 지식층도 극히 제한돼 있었으며 문자로 남기는 작업은 국가적 사업이었던 까닭에 기록이 많지 않았을 터다. 다시금 얘기하자면 너무 글자 하나, 일획에 지나치게 매달릴 필요가 없고 대의를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지 않을까 생각된다.

 

풍류도가 바로 화랑도가 아닐 것이다. 화랑도는 나라의 인재 양성을 위한 목적으로 초기엔 자연발생적으로 나중에 국가에 의해 풍류도 중에서 필요한 것만 취해 화랑도의 가르침이 형성됐을 것이다. 어떤 씨족, 부족집단이나 어린전사의 양성이 중요했을 터이다. 귀족, 성주의 자제들과 그 주위 낮은 계급의 자제들로 이뤄진 전사 양성습속(習俗)이 있었을 것이고 삼국 전란 시기에 ‘세속오계’와 같은 실천덕목이 만들어 졌을 것이다. 백제와 고구려에도 풍류도와 화랑도와 같은 정신사상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지만 기록은 남아있지 않다. 

 

 

한국철학을 전공한 성균관대 이선경 교수는 풍류도는 삼교 이전부터 존재했던 고유 정신사상이라며 그 근거로 최치원 이 쓴 <대숭복사비>의 내용을 제시했다. “우리 태평국(신라)은 승지이니, 사람의 성질이 매우 유순하고 지기가 만물을 생기게 하는데 모아졌다. 산과 숲에서는 말없이 고요하게 도를 닦는 무리가 많아 인(仁)으로써 벗을 모으고, 강과 바다의 물은 더 큰 곳으로 흐르려는 형세를 좇아, 선(善)을 따르는 것이 물 흐르는 것 같았다. 이런 까닭에 군자의 풍도를 드날리고 부처의 도에 감화돼 있는 것이, 마치 붉은 인니(인주)가 옥새를 따르고, 쇠가 거푸집 안에 들어 있 는 것과 같았다.”

 

이선경 교수는 또 <난랑비서>에서 풍류도의 핵심으로 언급 한 ‘접화군생’을 뭇 생명과 만나서 감화한다는 의미로 해석했 다. 이 교수는 풍류도는 이질적 사상들과 얼마든지 만나 대화할 수 있으며 인간을 넘어서 천지자연의 뭇 생명까지 감화시키는 생명사상이라고 강조했다. 최치원의 <지증화상비명> 에도 ‘어질어서 살리기를 좋아하는’ 구절이 있어 생의 철학‘이 잘 나타나 있다고 말했다. 이선경 교수는 또 최치원의 <진감화상비명>을 인용하면서 통일신라인의 고유정신이 갖고 있는 개방성에 주목했다.

 

“도는 사람에게 멀지 않고 사람에게는 남의 나라가 없다. 그래서 우리나라(東人)의 자손들이 불교도 하고 유교도 하는 것은 필연적인 일이다(계원필경 권2, ‘진감화상비명’)” 이 교수 는 “풍류도는 ‘접화군생’의 열린 인본주의를 바탕으로 하늘과 땅과 어울려 살아가는 이상향을 지향하고 있으며 이는 단군시대 신시(神市)의 소망과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허호익 대전신대 교수는 <난랑비서>에 나오는 ‘국유(國有)’ 라는 단어에 주목했다. 허 교수는 「최치원의 <난랑비서>의 해석의 여러 쟁점」이란 논문에서 최치원은 당나라를 서토(西土) 서국(西國)이라고 부르고 신라를 동국(東國)이라 부를 만큼 신라의 주체적 자각이 뚜렷했다고 말했다. 그러므로 최치원이 <난랑비서> 서두에 ‘국유’를 명시한 것은 풍류도가 유불선이나 중국식 풍류 개념과는 전적으로 다른 우리 민족 의 고유 사상임을 강조하기 위한 어법이라고 말했다.

 

허 교수는 풍류도는 중국에서 사용되던 색정적 풍류나 감흥적, 미학적 풍류도 아니며 은일형, 계절형, 순례형 풍류도 아니고 종교 신앙형 풍류라고 주장했다. 접화군생에 대해서도 최영성, 도광순 교수의 글을 인용해 초목이나 동물에게까지도 덕화를 베푸는 정신을 담고 있다고 말했다.  이선경 교수를 지난 11월 초에 만났다. 이선경 교수는 성균관대에서 조선시대 실학자이자 역학자인 이원구 사상에 관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교수는 풍류도와 단군신화는 역학 사상과 깊은 연관이 있다는 논문을 발표한 바 있다. 그는 「한국문화의 원형적 상상력으로서의 역학」에서 풍류 도와 단군신화는 음양 대대와 천지인 삼재, 상생의 생명사상 이 풍성하게 녹아 있다고 말했다.   

 


Q. 역학이라고 하면 보통 중국에서 들어온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이선경 안재홍 선생과 유승국 선생이 연구한 바가 있는데, 두 분의 선생님들이 역학을 중국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 된다고 말씀하셨어요. 부여에서 수골 복사가 성행하고 나중에 은나라에서 갑골 복사가 이뤄졌습니다. 안재홍 선생은 태극이고 팔괘고 간에 역학은 중국 특유의 문화 산물이 아니고 조선적인 요소가 매우 많다고 하셨어요. 삼국지 위서 부여전에 부여인들은 전쟁이 있으면 하늘에 제사를 지내고 소를 잡아 발굽을 보고 발굽이 갈라졌으면 흉하고 합쳐졌으면 길한 것 으로 봤다는 수골복사 기록이 나옵니다. 주역이란 본디 점치는 책인데, 북사가 동이에서 일찍 행해졌던 것이지요. 역학이 중국에서 체계가 잡혔지만 그 역학적 사고의 바탕은 동이 족이 이미 전해오고 있었다는 거지요.  


Q. 역학을 공부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까?

 

이선경  한국철학을 공부하다가 늘 역(易)에 걸리는 거예요. 역(易)의 사유를 모르니까, 한국철학, 성리학을 못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어요. 성리학의 이기론이라는 것도 주역과 닿아 있거든요. 동양학을 하면 항상 주역의 언어가 나옵니다. 대만에 어학연수를 갔다가 대만정치대학에서 역학의 대가이신 고회민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에게서 본격적으로 역학을 배웠습니다. 석사 논문은 「역경의 선(善) 사상 연구」 였습니다.    

 
Q. 일반인에게는 생소한 분인데, 이원구 선생을 사상가로 규정하셨는데, 그 이유는 무엇인지요?


 이선경 실학파들은 주장은 있는데 철학이라고 할만한 이론체계가 미약합니다. 이원구 선생은 북학파와 비슷하게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산업의 육성을 강조했습니다. 그리고 그러한 주장을 음양변증론이라고 할 수 있는 ‘구도육사론 (九道六事論)’의 이론 체계를 세웠습니다. 다시 말해 인륜과 산업은 결코 떨어질 수 없으며 뿐만 아니라 ‘산업 속에서 인륜이 실현돼야 한다’는 주장을 독창적인 역학론으로 설파하셨습니다. 이원구 선생의 역학은 중국 역학의 수용과 이해의 단계를 넘어 독자적 역학 세계를 여신 분이라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Q. 역학 사상이 오늘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떤 가르침을 줄 수 있을까요?

 

 이선경  역학의 기본 원리는 ‘음양 대대(待對)’와 ‘소식(消息)’이 라고 할 수 있습니다. ‘대대’란 대립된다는 말인데 음양, 즉 낮과 밤, 빛과 어둠처럼 대립돼 있지만 낮과 밤이 서로 연결돼 있지 않습니까. 어둠이 있어야 빛이 보이는 것이죠. ‘소식’은 잦아들고 불어난다는 뜻인데요, 낮이 줄어들면 밤이 늘어나고 밤이 깊어지면 해가 솟아난다는 것이죠. 이것을 인간 세상에 빗대면 내가 존재하려면 나와 상반되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미운놈 떡 하나 더 준다’는 말이 있지 않습니 까. 미운 놈을 밉다고 죽이는 게 아니고 미운 놈은 함께 살아 가야 하는 상생관계라는 원리입니다. 역에 보면 비구혼구(匪寇婚媾)라는 말이 있습니다. 도적인 줄 알았는데, 혼인할 짝이더라는 말이죠. 요즘 남북관계를 보면 여태까지 도적놈이라고 서로 대치했는데 좋은 기운이 돌지 않습니까. 우리는 대립자인 줄로 아는데 결국은 함께 살아가야 할 동반자라는 게 역학이 주는 교훈이라고 할 수 있 습니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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