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올해 1분기 성장률이 마이너스 0.3%를 기록했다. 본보에서 일찌감치 우려해왔던 대로다. 매크로 수단을 또 만지작거릴 모양인데, 그 런 수단으로 안 된다. 경제 심리가 너무 얼어붙었다. 현 정부가 한국경제와 기업을 인식하는 사고의 틀을 바꾸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 기업의 성장 모델에 대해 짚어본다.
내수시장만 바라보는 한국 기업들, 생존 힘들 것
‘글로벌화’의 진정한 의미는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고 있다는 점이다. 국가들 간의 지역 블록들이 존재하지만 일시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처럼 보일 뿐이다. 장기적으로 해롭게 작용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EU 블록에 대해선 회의적이다. 동구권 국가들이 EU에 가입하고선 폭죽을 터트리며 환호하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지금 난민문제로 갈등이 고조 되고 있다. 또 잘사는 회원국들과 못사는 회원국들 간의 적대감도 심화되고 있는 모습이다.
영국의 브렉시트 선택을 EU 블록 시장에 안주하기보다는 글로벌 시장에 뛰어들어 스스로 경쟁 양상에 몸을 내맡긴 것일 수도 있다고 본다. EU는 점차 과거 해체되기 전 소련과 닮은 꼴로 가고 있는 것 같다. 소 연방과 미 연방과는 다르다. 소 연방은 각 공화국 간 민족적 구성이 다른 경우였고 미국은 그런 정도의 이질성은 없다. 현재의 EU 회원국들 간의 이질성은 소 연방 내 공화국에 못지않게 크다. 완벽한 하나의 국가 단위처럼 통합을 이루어낸다는 건 꿈은 될 수 있을지 모르나 실제로는 불가능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합하면 분열하고 분열하면 합한다’는 동양의 지혜에 비춰볼때 EU는 애초부터 합해질 수 없는 걸 억지로 합하지 않았나 하는 회의가 든다. 글로벌화가 진전될수록 블록 경제권 내 회 원국들과 국민 개개인의 경쟁력은 ‘의존적 나태함’으로 더욱 하락할 것이다. 조직이 크면 규율이 느슨해지고 불평불만이 증가해 자연히 열심히 일하지 않는 분위기가 조성된다. 그런 이유로 큰 조직에서 오랫동안 일하는 직장인들이 나중엔 거의 쓸모없는 사람이 된다. 큰 조직일수록 규율이 바로 서고 보상과 벌칙이 분명하고 노동 강도가 높아야 운영이 가능한 법이다. 국가 간 연합체는 그런 기업조직처럼 운영하기가 불 가능하다.
트럼프 대통령이 화웨이를 비롯한 중국 기업들과 중국식 국가경제 확장에 뒤늦게 견제구를 날리고 있다. 그러나 미국과 유럽 선진국들은 이전에 거대한 중국 시장을 선점하려고 자신들의 강점인 지식과 기술을 스스로 내놓았다. 모든게 자기 이익을 위해 행동한 것이므로 남 탓할 것은 없다. ‘글로벌화’는 지식과 기술의 발달로 인해 필연적으로 도래할 수밖에 없었다. 글로벌화는 경쟁을 촉진할 것이며 국가 간 양극화보다 평준화에 기여함도 분명해 보인다.
앞서 글로벌화란 세계가 하나의 시장으로 통합되는 과정이라고 설명했는데, 이럼에도 한국 기업들이 내수시장만 바라 보는 경향이 여전하다. 1960-70년대 경제개발 계획 시기보다 더 후퇴한 느낌이 들 정도로 내수 지향적이 됐다. 그동안 헝그리 정신은 사라지고 앞다퉈 성장 과실을 누리려는 심리의 소산이라고 본다.
한국처럼 협소한 시장을 가진 나라와 국민들은 끊임없이 세계 시장을 추구해야 한다. 그래야 기회도 얻고 불가피하게 혁신도 찾아내게 된다. 중국이 성장하는 것은 거대한 자국의 내수시장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아이디어 상품 한개 만 히트 쳐도 큰돈을 거머쥘 수 있다. 인도 경제도 중국 경제 와 마찬가지로 천혜의 내수시장을 가지고 있으므로 경제대 국은 시간문제다.
한국은 전통적으로 ‘혁신 빈곤국’이었다. 외래의 불교와 유교를 그대로 가져와 숭상했다. 불교는 토착 종교와 습합이라도 했으나 유교는 중국 종주국보다 더 교조화됐다. 중국은 시대 변화에 따라 양명학, 훈고학 등으로 혁신했으나 조선은 성리 학만 고집했다. 조선조의 상층부는 외래의 것을 답습하고 심화하는 것은 뛰어날지 모르나 혁신력은 보여주지 못했다. 광 복 후 경제 후발국의 위치에서는 선진국의 모든 것들을 그대로 베껴 싸게 그럭저럭 만들면 충분했다. 후발 개도국을 졸업한 한국은 이제 대중소기업 할 것 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생존 할 수 없다. 혁신하려면 눈높이를 세계 시장에 돌리지 않으면 안된다. 그것은 내수 시장이 작은 한국경제의 아킬레스건이다. 선진국 모델만 모방만 하는 것은 일종의 ‘사대주의’라고 도 볼 수 있다.
한국 정부가 규제 혁신에 머뭇거리는 것은 전통적 보수성과 국내 시장을 보호해오던 후발국 타성을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규제 혁신 국가가 되려면 꼭 필요한 규제만 만든다는 의식혁명이 있어야 한다. 규제 만드는 것은 최대한 신중히 하고 있던 규제도 불필요해지면 즉시 폐지해버려야 한다. 시시 콜콜 규제를 만들어내는 것은 정부가 ‘어리석은’ 백성들을 일 일이 가르치고 간섭하려는 ‘관존민비의 교화 의식’에서 나온 것이다. 학문과 기술, 경제가 발전한 국가에서는 민간이 관료보다 저만치 앞서간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국내 규제가 강하면 신한은행처럼 베트남과 일본에서 핀테 크를 키워 역으로 국내로 들어오는 방법도 있다. 대기업은 해외에서 혁신 아이템으로 파일로트를 운영한 뒤 국내와 글로 벌 시장을 공략하는 전략이 통할 것 같다. 벤처기업들은 처음부터 해외에서 사업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싱가포르와 이스라엘, 핀란드 기업들이 그런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이들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작은 나라임에도 더 과감하게 글로벌 시장에 뛰어드는 용기 있는 혁신 기업들이 넘쳐 난다.
우리나라는 이웃에 거대한 내수시장을 갖고 있는 중국과 일본에 인접하고 있는 유리한 위치에 있다. 이런데도 내수시장만 쳐다보는 로컬 의식으로는 될 게 없다. 한국 정부가 왜 앞 장서서 일본과 대척 자세를 취하는지 이해할 수 없다. 감정 외교가 경제에 이득이 될 리 없다. 실리외교가 절실하다. 국내의 주요 언론매체들도 중국과 일본의 인터넷 등에 오르내리는 시시콜콜한 동향까지 확대 보도해 불필요한 나쁜 감정만 자극하는 타성에 젖어 있다. 중국과 일본의 정부와 다수 국민들은 한국만 바라보지 않는 강대국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는 법과 제도, 정책을 논할 때 항상 미국, 영국, 독일, 일본 등 강대국들과 비교한다. 그들은 비교 대상으로 참고할 수 있겠으나 실질적인 벤치마킹 국가는 이스라엘, 핀란드, 싱 가포르, 스위스 등 강소국이라고 본다.
글로벌 경제 시대엔 기업이 강해야
현재 우리나라는 기업가와 자영업자가 가장 약한 위치에 있는 듯하고, 정부와 노조가 센 듯하다. 기업들은 아우성인데, 세금 잘 걷히고 노조들 눈치 보느라 경영자들이 극도로 위축돼 있다. 한국경제에서 정부 변수와 노조 변수가 너무 커졌다. 오늘날에 대기업은 벤처기업처럼 혁신하고 신속하게 의사결정을 내리지 않으면 생존 수명이 짧아진다는 것은 명확한 사실이다.
나라 전체가 벤처 의식으로 무장해야 한다. 기업이 맘껏 세계 시장에서 혁신적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도록 법과 제도, 규제를 풀어주고 노동자와 국민들은 벤처 정신으로 뒷받침 해야 한다. 근거 없는 중견 국가론, 안이한 선진국 진입론의 자화자찬은 걷어치우고 교육과 직업훈련 시스템을 모두 바꿔서 4차 산업혁명에 대비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한국 기업들이 취할 수 있는 혁신 전략
기업의 성장 및 유지 모델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플 랫폼 모델, 품질 모델, 벤처 모델이다. 한국경제는 그간 중·저비용, 중·고품질 모델로 성장해왔다가 생산비용은 고비용으로 바뀐 데 비해 고품질 생산에 삐걱거 리면서 어려움에 직면하고 있는 모습이다. 한국경제의 엔진 인 품질 모델이 강력한 노조로 인해 비용을 줄일 수는 없는 상태에서 고품질로 버텨내야 하는데, 이게 어렵다. 인원을 줄 일 수 없다면 해외 이전과 자동화 외에는 선택 여지가 없다. 이 과정이 험난한 상황이므로 지금 큰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가 초기에 대기업 경영자들을 압박하다가 뒤늦게 돌아선 것은 다행이다.
노동자들도 지금은 비상 상황이므로 경영자들을 믿고 따라줘야 한다. 한국의 주력 제조업들이 체질 개선할 수 있도록 정부와 노동자들이 협력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가 유럽의 제조업을 물려받았듯이 이제 중국에 우리의 주력 제조업을 다 넘겨줘야 할 판이다. 품질 모델은 뻔하다. 비용과 매출, 이익의 계산이 훤히 보이는 모델이다. 노동자와 정부는 제조업 경영에 대해 무슨 ‘신비주의’ 같은 순진한 인식을 걷어내고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봐 야 한다. 걸핏하면 파업하는 행태는 내 발등을 찍는 것과 같 다.
한국에서 벤처모델은 네이버와 게임산업, 화장품산업, 한류 연예산업 정도다. 이 정도로는 한국경제를 먹여 살리는 주력 산업으로는 턱없이 적은 숫자이다. 한국경제는 어차피 중국 때문에 품질 모델의 제조업 비중은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그렇다면 벤처모델밖에 없다. 한국경제가 현 수준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벤처모델에 올인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다. 한국 산업 전체가 이스라엘, 핀란드, 싱가포르처럼 벤처모델을 지향해야 하는 절박한 시점이다. 판교 클러스터 가지고는 턱도 없고 전 산업단지가 벤처기업들로 꽉 차야 한다.
플랫폼 모델로 성공한 기업은 한국에서 삼성과 LG, 현대차, SK, CJ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플랫폼 모델은 자체 생산 및 외주 생산의 운영능력, R&D 능력, 브랜드 관리와 마케팅 능력, 물류유통 능력, 시장 파악력, 자본력 등을 골고루 갖추고 있어야만 가능하다. 플랫폼 모델은 고난도의 능력을 요구하기 때문에 창업가에서 자신의 손으로 대기업으로 성장 시킨 기업가가 아니면 플랫폼 기업을 운영하기 어렵다. 아마 존의 베조스, 스타벅스의 슐츠, 페이스북의 저커버그, 화웨이의 런정페이, 이병철, 정주영 등의 인물이다.
플랫폼 기업을 경영할 수 있는 경영자는 창업가와 유사한 훈련 과정을 가진 천재급이 아니면 안 된다. 애플의 팀쿡 회장이 대표적인 현직 인물이다. 앞서든 한국의 플랫폼 기업들을 경영하고 있는 재벌 후세 경영자들은 물려받은 기업들을 유지하고 있는 것만 해도 대단한 일이다. 재벌의 나쁜 점만 볼 게 아니라 예외도 있으니 후세 경영자들을 잘 길러내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우리는 ‘검증된 경영자’를 소중한 자산으로 인정해야 한다. 탁월한 경영자는 어느 나라나 회소한 자원일 수밖에 없다. 한국 정부와 검찰이 경영자와 기업가들을 너무 가볍게 대하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한국은 지금보다 더 많은 플랫폼 기업을 만들어야 한다. 플랫폼 기업은 자연히 글로벌 대기업 으로 성장하게 돼 있다.
한국의 벤처모델은 해외에서 찾기보다는 네이버와 게임산업, 한류연예산업, 화장품 산업 등의 성공 요인을 분석해 벤치마킹하는게 좋다고 본다. 한국의 제조업과 서비스업이 이들 벤처 기업들의 모험정신, 기동성, 인적 채용과 관리 등을 배울 필요가 있다. 벤처기업에게는 시장이 좁다는 개념은 없다. 벤처 정신은 시장을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또 벤처 정신은 하나의 집 중하는 전략이 핵심이다.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는 어느 때보다 기업가와 전 국민들이 한 가지에 집중하는 벤처정신이 절실히 필요해 보인다.
MeCONOMY magazine May 20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