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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능력주의는 허구다’… 개인 노력이 쓸모없는 사회

-능력주의, 개인 노력과 능력에 따라 보상받는 사회시스템

-부모의 부와 권력 등 비(非) 능력적 요소가 더 큰 영향

-학교와 교육, 기존 불평등 반영하고 정당화

-‘노오오오력’으로도 성공하지 못해…타고난 재능 ‘발견’되는 타이밍 중요

-강력한 조세 정책 등 경제·정치 제도 개선 급선무

<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능력주의(meritocracy)’는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비례해 보상을 해주는 사회 시스템을 뜻한다. ‘능력주의’라는 말은 태생 자체가 귀족과 계급에 따른 불공정성을 타파하기 위해 탄생했다. 1958년 영국의 정치가이자 사회학자인 마이클 영(Michael Young)이 ‘능력주의 사회의 부상’(The Rise of Meritocracy)이라는 책에서 당시 ‘귀족주의 사회(aristocracy)’에 상응하는 개념으로 만든 말이 능력주의다. 즉 배경보다는 지능과 노력을 능력(merit)으로 보고 기회만 균등하다면 개인의 노력과 능력에 따라 사회적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의미다. 

 

 

스티븐 J. 맥나미와 로버트 K. 밀러 주니어는 자신들의 책 ‘능력주의는 허구다(The Meritocracy Myth)’에서 이렇게 선언한다. “그동안 능력주의는 이상적인 시스템으로 여겨졌으며 사람들은 능력주의를 숭배하기까지 했다. 그 누구에게도 차별적 특혜를 주지 않으며, 모두에게 공평한 기회를 제공하며, 타고난 계층 배경이나 부모의 사회경제적 지위와 상관없이 오로지 개인의 능력에 따라 보상을 제공한다는 논리는 수많은 사람들을 현혹시켰다.”

 

즉 능력주의는 현실에서 전혀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능력주의가 가장 공정한 시스템이라고 믿어왔던 우리나라에서 최근 몇 년간 이런 믿음을 저버리는 일이 반복적으로 발생 한 점을 놓고 봤을 때 귀 기울일만한 메시지다. ‘흙수저’와 ‘금수저’로 표현되는 부와 권력의 대물림이 개인의 능력을 쓸모없게 만드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나마 계급적 장벽을 개인 능력으로 돌파할 수 있는 마지막 보루였던 ‘시험’이라는 시스템도 서울 숙명여고 시험지 유출사건과 강원랜드와 KT 채용비리에서 보듯 무너져 버렸다.

 

 

저자는 책에서 “능력주의는 개인의 능력이 성공의 토대가 될 수 있다고 가정하지만, 지금의 세상은 비능력적인 요인들이 훨씬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며 “그것들은 개인의 능력이 아무리 뛰어나다 해도 따라잡을 수 없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처음부터 ‘불평등한 출발점’을 우리에게 안겨준다”고 지적한다.

 

‘능력’은 ‘비능력’을 이길 수 없다


책은 ‘능력적 요인(Merit factor)’으로 개인의 타고난 재능, 능력, 근면성실함, 올바른 태도, 높은 도덕성, 이상적인 자질 등을, ‘비능력적 요인(Nonmerit factor)’으로는 부모의 경제적 자원과 가족의 계층 배경, 부의 세습, 특권의 대물림, 우수한 교육,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행운, 차별적 특혜, 태어난 시기, 시대적·사회적 상황 등을 꼽았다. 그러면서 이런 비능력적 요인들은 능력이 미치는 영향력을 약화시키고 오직 능력만으로 자신의 잠재력을 발휘하려는 사람들의 노력을 좌절시키는 것이다. 아무리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도 넘을 수 없는 벽, 사회 구조적 요인들 때문에 우리 사회는 더 이상 지금의 재벌들이 그랬듯이 자영업에서 자수성가형 인물이 나올 수 없게 됐다. 이제 우리 사회는 능력주의 힘을 발휘할 수 없다는 의미다.


교육으로도 극복할 수 없다

 

그동안 교육은 비능력적 요인으로 인한 서로 다른 출발점을 상쇄해 줄 방안이었다. 수십 년 전 우리 사회는 이런 시스템이 잘 작동했다. 가난한 집 공부 잘하는 장남이 집안을 일으켜 세우는 신화들이 사회 곳곳에서 현실화됐다. 하지만 이마 저도 이젠 거의 불가능해졌다. 저자는 교육이 ‘불평등을 줄이는데 도움이 된다’는 기존 이론과는 반대로 오히려 “교육은 빈곤의 원인이 아니라, 빈곤의 결과”라고 주장한다.

 

저자는 책에서 “학교와 교육은 사회에 존재하는 기존의 불평등을 반영하고 정당화할 뿐 아니라 오히려 더 심화시켜 부모 세대에서 자녀 세대로 불평등한 삶을 대물림하는데 일조하는 잔인한 매개체의 역할을 한다”며 “프랑스의 대표적인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 또한 학교를 ‘사회적 계층을 재생산하는 매개체’라고 강조했다. 교육을 통해 불평등이 완화되는 것은 절대 아니다”라고 못 박았다.

 

최근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SKY 캐슬’이 보여주듯 이제 부모 세대는 교육을 통해 자신들의 특권을 ‘무형 상속’하고자 한다. 우수한 교육을 통해 자녀의 미래에 투자하는 것이 다음 세대로 특권을 넘겨주기 위한 중요한 방식이 된 것이다. 이미 부모의 소득이 자녀의 명문 대학 입학과 상관관계가 있다는 연구 결과는 차고 넘친다. 책은 결국 저소득층과 소외 계층은 교육을 통해 빈곤에서 탈출해 계층 이동을 실현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질 낮은 교육이라는 덫’에 갇히고 말았다고 지적한다.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

 

저자는 비능력적 요인 중에서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과 문화적 자본(cultural capital)에 대해도 심도 있게 다룬다. 이 두 자본은 능력주의를 좌절시키고 비능력주의를 강화하는 중요한 요인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자본은 한마디로 사회적 인맥으로, 당신을 대신해서 혹은 당신을 위해서 권력이나 영향력을 행사해줄 수 있는 사람이 당신의 든든한 사회적 자본이다. 개인적인 능력이 뛰어나더라도 자신의 인맥이 말라있는 상황이라면 성공할 수 없다. 즉 ‘무엇을 아느냐보다 더 중요한 것은 누구를 아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더 나아가 누구를 아느냐보다 ‘어떤 위치에 있는 누구를 아느냐’가 핵심이다.

 

문화적 자본은 스타일, 자세, 매너, 취향, 생활양식, 학위, 자신을 표현하는 기술 등 소수만이 알고 있는 전문화된 정보와 지식이다. 이는 가정에서 어렸을 때부터 오랜 시간에 걸쳐 자 연스럽게 습득된다. 저자는 이런 문화적 자본 습득을 ‘차별적인 상속 과정’이라고 꼬집었다. 저자는 책에서 “중산층 가정과 노동자 계층 가정은 자녀들을 어떻게 양육해야 하는지에 대해 각기 다른 문화적 레퍼토리를 갖고 있으며, 따라서 기회의 차이로 이어지는 각기 다른 사회적 역량과 문화적 역량을 갖도록 자녀들을 사회화시킨다”고 말한다.

 

경제적 자본을 ‘올드 머니(old money)’라고 한다면, 문화적 자본은 교양과 안목이라고도 불리는 ‘뉴 머니(new money)’인 셈이다. 올드 머니가 많더라도 뉴 머니를 갖추지 못한 이른바 ‘졸부’들을 차별적으로 무시하는 경향이 여기서 비롯된다.

 

이런 맥락에서 저자는 미국의 제44대 대통령이었던 버락 오바마의 성공이 능력주의를 상징하는 사건이 아니라고 본다. 2008년 오바마의 당선은 아메리칸 드림과 능력주의 성공이라고 평가받았다. 하지만 저자는 오바마의 성공이 미국에서 소수 인종이나 흑인의 경험을 대표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미 오바마는 어린 시절부터 상당한 수준의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했다. 오바마는 아이비리그에서 교육받으며 자신의 사회적 자본과 문화적 자본을 강화해 왔다. 저자는 책에서 “오바마와 같은 사람들은 자신들의 능력과는 무관하게 과도한 기회와 명망 있고 영향력 있는 형태의 사회적 자본 및 문화적 자본에 접근할 수 있는 특혜를 물려받는다”라고 했다.

 

 

‘노오오오력’으로도 성공하지 못한다

 

저자는 중요한 개인적 자질인 타고난 재능, 근면성실함, 올바른 태도, 도덕성 등이 성공에 미치는 영향은 생각보다 훨씬 적다고 말한다. 더욱이 이런 자질들을 갖추어도 모두 똑같이 성공할 수 없다고 확신한다. 핵심은 이런 개인적 자질들도 ‘타이밍’이 맞아야 성공한다는 것이다. 책은 “타고난 재능만으로는 절대 아무것도 안 된다.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재능은 반드시 누군가에 의해 ‘발견’돼야 하고, 체계적으로 ‘계발’돼야 하고, 한 단계 더 ‘발전’돼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재능이 발견되지 않으면 자신에게 재능이 있다는 사실조차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이는 결국 자신의 타고난 재능을 기반으로 사회적 이동성을 달성할 수 있는 기회조차 얻지 못한 채 끝나게 된다는 뜻이다”라고 말한다.

 

책은 또 “여기서 외면할 수 없는 한 가지 요인이 바로 ‘타이밍’이다. 자신이 언제 태어났으며 자신이 본격적으로 노동 인구에 편입되는 시기에 노동 시장이 어떤 상황에 놓여 있는지는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며 “자신이 노동 시장에 처음 진입하는 시점이 경기가 호황이고 일자리가 좀 더 안정적으로 보호받는 때라면 이후에도 그 혜택을 쭉 이어받을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베이비붐 세대의 자녀들처럼 늦게 태어나 노동 시장이 불안정할 때 진입하면 일자리 때문에 훨씬 힘겨운 삶을 살 수 있다”고 말한다.

 

저자는 “현재는 대학 졸업장을 필요로 하는 신규 일자리 하나당 약 세 명의 새로운 대학 졸업자가 줄을 서고 있는 셈이다. 지금의 경제는 부모 세대 때보다 일자리 창출 능력을 3분의 1이상 상실했다”며 “모두들 잔뜩 차려입었지만 갈 곳이 없는 처지가 된 것이다. 이처럼 태어나는 시기는 개인의 능력 으로 조절할 수 없는 비능력적 요인이지만 이 또한 일자리에 많은 영향을 끼친다”고 주장했다.

 

상속주의와 능력주의, ‘제로섬 게임‘


저자는 결국 상속주의와 능력주의를 두고 ‘엄청난 모순’을 확인한다. 책은 “사람들은 사회의 시스템은 공정하고 모두가 똑같은 성공의 기회를 갖는다고 필사적으로 믿고 싶어 한다. 그와 동시에 개인에게는 자신의 재산을 원하는 방식대로 자유롭게 처리할 권리가 있으며 이때 국가의 개입은 최소화돼야 한다고 단호하게 이야기한다”며 “하지만 두 가지를 모두 가질 수는 없다. 상속과 능력주의는 분배의 ‘제로섬 게임’”이 라고 말했다. 즉 둘 중 하나가 많아지면 나머지 하나는 그만큼 줄어들 수밖에 없는데, 지금은 개인의 능력이 소득과 부의 분배에 상속만큼 많은 영향을 끼치지는 못한다. 즉, 상속주의가 능력주의를 앞서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 사회를 평등하고 좀 더 능력이 중시되는 방향으로 바꾸기 위해서는 상속주의, 즉 부와 권력의 불평등이 완화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권력자들이 강한 의지로 강한 정책을 펴야 한다. 이와 관련해 책은 강력한 조세 정책과, 부와 소득의 격차를 줄이기 위한 다양한 세수 지출 프로그램, 대중의 의견은 보다 적극적으로 수용하되 부유층의 좁은 관심사에 지나치게 휘둘리지 않도록 경제 제도와 정치 제도를 개선하는 것 등이 급선무라고 제언한다.

 

MeCONOMY magazine June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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