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콤포지션 경제학(8) 창조적 조직의 구성 원리

 

<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원리’라고 하면 좀처럼 변하지 않는 근본적 이치와 규범이다. 창조성이 최대한 발휘되는 조직은 조직 구성원들이 자율의식을 가지고 스스로 성취를 거두어가는 자발적 문화를 가진 곳이다. 그러기 위해서 규율은 갖추고 있으되 권위적 일방 문화가 아닌 공정한 경쟁과 정당한 보상이 조화로운 실현되는 조직 문화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콤포지션 경제학 시리즈 8번째, 창조적 조직의 구성 원리를 알아본다. 

 

현대기아차가 올해부터 연 2회 실시하던 정기 대졸 공개 채용을 폐지하고 직무 중심 상시공채로 전환하기로 했다. 한국의 대표적 기업의 이런 조치는 중대한 변화의 흐름으로 간취된다. 이것도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서 벌어진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에 따른 영향으로 짐작된다. 이제 기업들은 여유로 사람을 확보하겠다는 생각을 일절 버리고 필요한 사람만 뽑아서 제대로 일을 하도록 하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노동의 종말인가 새로운 노동의 탄생인가
 

인류 역사를 ‘노동’의 관점에서 분류해볼 수 있다. 농업시대 에는 가장을 중심으로 가족이 작물생산의 전 과정을 담당했 다. 수공업도 기본적으로 가족과 도제 중심으로 소규모 형태 의 작업이었다. 다만 유통과 무역업은 곳곳에 흩어진 생산품 을 집산하고 전국 시장과 해외의 소비자들에게 공급해야 하 므로 일찍부터 조직화하고 분업화해 큰 규모로 발전할 수 있 었다. 이태리 피렌체와 베니스 도시국가의 번성이 이를 잘 말 해주고 있다. 조선은 불행하게도 상업과 무역을 억제해 국력 번성의 싹을 잘랐다.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일어나서 공업생산에서 분업과 대규모 고용시대를 열었다. 공업의 대규모 고용형태가 타 산업으로 도 전파됐다. 그렇게 될 수 있었던 기반은 자국 경제 성장과 해외무역의 확장이었다. 각 개별 사업장을 기준으로 보면 최상위의 경영진과 고급기술자와 전문가, 중간 노동자, 단순노동자 등 4계층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 기계 설비와 장비, 시설 등 인프라가 중요하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의 노동이 중추를 담당했다. 인간이 테크놀로지를 구동하고 도구를 사용 해 생산했다.

 

그런데 컴퓨터가 나타나면서 ‘노동’의 위치에 변화가 일기 시작했다. 1960년대 IBM의 컴퓨터 등장과 1980년대 MS의 PC 보급 시기부터 치면 불과 반세기만에 AI가 단순 노동직부터 밀어내고 있다. 곧 그 여파는 중간 노동자들에게 밀칠 것이다. 문제는 AI의 노동혁명이 대규모 제조업이 주력인 한국에 가장 강하게 미칠 것이라는 점이다. 한국 산업은 서구로부터 표준화된 공장과 여타 비즈니스 모델을 패키지로 들여온 관계로 기술자와 전문가들은 상대적으로 적은 가운데, 중간 노동자와 단순 노동자들이 많은 구조다. 다시 말해 AI 도입으로 대량실업 사태를 불러올 수 있다는 얘기다.

 

서구 선진국과 일본은 기술자와 전문가들이 산업 전반에 산재해 있어 AI 충격을 완화해가면서 적응해갈 여유가 있는 편이나 한국 산업과 노동현장은 그런 준비가 안돼 있다. 사실 한국에 노조가 강한 것도 이와 같은 중간 노동자와 단순 노동자들이 많은 구조 때문이기도 하다. 한국의 노동현장은 강력한 노조의 철벽 안에서 보호 내지 안주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 스스로나 경영자 모두, 하루빨리 기술자와 전문가 층을 두텁게 해야 한다. 흔히 사무직과 관리직이라고 하면 ‘전문성’과 관계없다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전혀 그렇지 않다. 대표적인 예가 ‘금융직종’이다. 금융직종이야말로 전문성을 꽃피울 수 있는데, 이제야 핀 테크와 글로벌화를 서두르고 있다.

 

‘전문성’이란 현재의 시점에서 지금 일하는 장소에서 만들어 진다는 기본적인 개념을 잘 모르기 때문인 것 같다. 한국은 조선시대에 유학 경전만을 공부해 과거에 급제해 관리에 등 용되는 것을 최고로 치고 공상을 천시했다. 그저 책에 씌어져 있는 것만 중시하고 현장에서 스스로 손과 머리를 사용해 지식과 기술, 노하우를 얻는 것을 알지 못했다. 그런 전통적 통념 때문에 광복 후 과학기술을 도입한지 상당한 시간이 지났는데도 도구와 테크놀로지를 새로 만들어내는 과학기술 문화를 형성하지 못했다. 우리 생활 주변과 일터를 보면 도구와 테크놀로지의 거의 전부가 외국에서 그대로 들여온 것들 이다.

 

 

전 국민 대상 평생교육 일환으로 ‘코딩 교육’ 실시하자

 

얼마 전 이재용 삼성 부회장이 소프트웨어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말을 한 적이 있다. 올해부터 우리나라 초등학교에서 코딩 교육을 실시한다고 하는데, 늦었다. 중고생은 물론이고 인문계, 사회과학계 대학생들도 코딩 교육이 필요하다. 기존 기술자와 전문가, 노동자도 코딩 교육을 통해 4차 혁명기술을 선제적으로 대응해 나가야 한다. 중장년층도 평생교육 차원에서 코딩을 배워서 부족한 소프트웨어 인력을 보충할 수 있다고 본다. 현재 제조업의 하드웨어도 컴퓨터 알고리즘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다.

 

직장이 AI 교육의 일익을 담당해 일터에서 기존 공정과 서비스에 AI기술을 접목하는 R&D를 서둘러야 한다. 각 기업들 은 AI 융합기술을 대학에서 도입하려는 생각은 아예 버리고 자기 일터에서 개발하려는 의지와 각오를 다져야 한다. 가만히 있다가는 선진국의 AI 융합기술을 비싼 값에 들여와야 할 지 모른다. ‘퍼스트 무버’란 스스로 테크놀로지와 도구를 만드는 것을 말한다. 대학은 기초 연구하기도 급급하다. 한국 대학은 등록금이 묶여 있고 정부 지원도 시원찮다. 기부도 턱없이 부족한데다 학생 수도 줄고 있어 사면초가라고 할 수 있다. 기업의 연구개발이 필수적인 이유다.

 

그럼에도 입만 열면 제조업 필수론을 얘기하는데 당연한 얘기도 되풀이 말하면 실없는 소리가 된다. 제조업의 스마트화는 다른 말로 표현하면 인력 조건의 구조조정을 의미한다. 기존의 중간 및 단순 노동은 사라지고 스마트화에 맞춰 새로운 기술과 능력을 갖춘 노동자들이 필요하게 됐다. 소프트웨어 인력이 전 분야에 배치되지 않으면 안된다. 한국경제는 지금 태풍권 안에 진입하고 있는 중이다. 문재인 정부의 노동복지 정책을 보면 폭풍 속에 조각배처럼 흔들리는 배의 하급 선원들만 챙기려 들고, 배 자체는 전혀 생각하지 않는 듯하다. 선박이 침몰할지 모르는 위기에 처했는데, 선원들의 임금과 복지만 높여주려는 선심 정책을 펴는 꼴이다.

 

기자가 보기에 한국 일터에서 가장 힘든 존재가 기업가인 것 같다. 기업가는 24시간 일하는 존재인데 기업가의 희생을 너무 강요하고 있다. 갑질하는 악덕 기업가들도 분명 있을 것이 다. 그건 검찰에서 사건으로 처벌하면 된다. 전체 기업가들을 매도해 기업가들의 숨통을 죄는 정책을 펴고 불필요한 규제 들을 제도화해서는 안 될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AI 혁명을 맞아 노동 전문가보다는 인력 전문가, 인재 양성 전문가가 절실히 필요하다고 본다. 노동의 시대는 가고 창조적 인재 시대가 성큼 다가왔다. 
 

직장인 의식에 앞서 직업인의 자부심과 근성 필요
 

직장인에게 정년이 있지만 직업인에게는 정년이 없다. 직업인은 본인의 건강이 허락하는 한 일을 할 수 있다. 중간 노동자와 단순 노동자는 직장인이지 직업인은 아니다. 자기 직업에서 기술자와 전문가 수준에 이른 뒤에야 직업인이라 부를 수 있다. 처음부터 직업인이 되는 것은 아니다. 직장인으로 있으면서 공부와 실험을 계속하고 필요하면 개인적으로 연구소 혹은 연구팀을 만들어 지식과 기술 습득과 연구개발을 해야 직업인이 될 수 있다.

 

대부분의 직장인들이 직장 내에서 주어진 일만 잘하면 되지 않느냐고 생각하는데, 그리해서는 창조적 기술자와 전문가는 어림도 없다. 어떤 사람이 기술자와 전문가 수준에 도달 하는데는 중간 노동자였을 때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는가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중간 노동자일 때는 누구나 미래가 불확실해 보인다. 그러면 대부분, 좌고우면하며 정작 자기 일은 소홀히 한다. 불확실함 속에서 꿋꿋하게 자기 길을 걸어야 전문가와 기술자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불확실성’이 존재하는 방향에 오히려 기회가 있는 법이다. 안전한 길을 선택하면 평범하게 되기 쉽다. 예를 들면 예술가가 교수가 되면 창작 활동은 못하게 되고 창작을 병행하더라도 좋은 작품을 창작하기 어렵다. 본업을 전업으로 해야 한다. 본업으로 먹고 살기 힘들다면 부업을 하되, 부업이 본업이 되면 안 된다.

 

직장인이 전문가가 되기 어려운 장애물은 ‘승진과 인사이동’ 때문이다. 우리나라 조직의 인사 관행을 보자. 서두에서 현대기아차도 정기 신입모집을 하지 않기로 했는데, 신입사원을 같은 시기에 뽑아 동기생 의식을 형성하게끔 하는 것은 조직에 좋지 않고 본인에게도 해롭다. 동기생 의식 때문에 승진 경쟁이 벌어지고 그로 인해 전문성보다는 승진이 목표가 된다. 유능해 일찍 승진할수록 일의 현장과는 자연히 멀어진다. 선진국 글로벌 기업들은 승진해 직책을 맡았다고 해도 현장을 놓지 않고 직책이 끝나면 본래의 일로 돌아오는 문화가 정착돼 있다.

 

우리는 승진해 현장을 떠나면 다시 돌아오지 못하는 분위기다. 조직이 상하위계 문화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엊그제 상급자로 있다가 부하 밑에서 직원으로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하므로 다른 부서로 가게 돼 다시는 자기가 잘 해오던 그 일의 현장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다. 따라서 초급 간부가 되면 그때부터는 승진 레이스 외에는 선택할 길이 없다. 승진하면 축하를 받고 승진하지 못하면 좌절해 더욱 전문성을 쌓으려는 의욕도 함께 상실한다. 이런 한국의 직장문화와 관행으로 한국 직장의 상층부에는 진정한 전문가는 거의 없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것이다.

 

전문가란 그 일의 본질을 꿰뚫어서 범인들은 도저히 볼 수 없는 것을 보는 안목을 갖춰야 한다. 그러려면 수십년간 오로지 그 길을 걸어가야 한다. 일의 전문가는 마라톤과 같다. 골인을 앞두고도 방심하면 낙오한다. 한국 직장의 초급 간부는 대체로 5년과 10년 사이에 되는데, 10년은 일해야 전문가의 입문에 들어설 수 있다고 본다. 그것도 아주 열심히 하는 사람들에게 해당된다.

 

선진국 기업에서는 우리 기업에 있는 형태의 정규직과 정년 제란 것이 없다. 그 사람이 회사에서 필요로 하면 계속 근무 하는 것이다. 우리처럼 회사에서 필요하지 않은데도 정년까지 근무하도록 보장해주는 개념의 정규직은 없다. 미국도 1970년대까지는 평생직장이 있었으나 일본과 독일과의 경쟁, 뒤이어 아시아 신흥국가들의 도전으로 평생직장제를 포기하게 됐다. 채용 당시 필요한 사람을 수시로 뽑고, 뽑을 때 연봉협상을 제시하고 합리적인 선에서 보수와 복지조건이 결정된다. 사원을 채용하는 기준이 그 직무에서 필요한지 여부이므로 ‘전문성’이 최우선의 고용 요건이다.

 

지원자는 항상 자신의 전문성을 향상시키는 방향으로 경력을 관리하고 그 경력을 가지고 연봉협상을 한다. 계약기간이 끝나 새로 계약 할 때마다 그 사람의 실적을 평가해 채용연장과 조건을 정한다. 또 선진국 기업에서는 조직의 중추적인 자리인 팀장은 동료의 일원으로 책임자적 역할을 잠시 맡고 있을 뿐이다. 연수가 오래돼도 팀원으로 계속 남아 있기를 바라는 이들이 많고 팀장으로 있는 중에도 빨리 짐을 벗고 팀원으로 돌아오기를 바라는 분위기다. 일이 프로젝트 별로 이뤄지기 때문에 팀 구성원들이 이합집산 하는 경우가 잦다. 이런 제도를 둔 선진국 기업은 한마디로 전원이 전문가나 준 전문가들로 구성돼 있다고 보면 된다. 중간 노동자들이 대종을 이루는 우리 직장 과는 근원적으로 다른 모습이다. 한국의 노동 생산성이 하위 수준인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조직의 제도와 관행 탓이다.  

 

이에 반해 우리나라 조직의 기수별 순혈주의는 조직의 독약 과 같다. 우리처럼 전문가와 기술자는 극소수이고, 다수가 중 간 및 단순 노동자들로 구성된 조직으로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하기 어렵다. 4차 산업혁명 시기를 맞아 전문가와 기술자 중심으로 탈바꿈하는 조직 개혁을 동시에 진행해야 한다. ‘창조성’은 전문가와 준 전문가, 조정 역할을 하는 팀장만 있으면 저절로 발휘되게 돼 있다. ‘창조성’은 그런 작동 구조를 만들어주는 조직부터 만들어야 나온다. 중간 노동자와 단순 노동자들이 팀장을 맡는 조직에서는 ‘창조성’은커녕 창조성 에 역행하는 일이 비일비재할 가능성이 큰 법이다.  선진국과 같이 정년제를 없애고 계약제를 금방 도입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다양한 형태의 임금제와 복지 조건과 연계한 계약제의 도입의 길을 열어놓아야 한다. 
 

‘전문성’은 스스로 얻는 것
 

‘전문성’은 어디서 배우는 것이 아니고 스스로 익히고 깨달아 얻는 것이다. 대학에서는 지도교수의 지도를 받아 박사학위를 받고 일터에서는 도제식 수업과 훈련으로 전문성을 쌓아 갈 수 있다. 일반적으로 학교는 기초 입문만 가르칠 수 있고 잘해야 중급까지다. 실습하지 않고 숙련되지 않은 지식과 기술은 아무런 소용이 없다. 자고로 전문가가 되는 과정은 스승과 제자, 도제를 통해서만 가능하며 그런 가운데 본인 스스로의 힘으로 체득해야만 한다는 원리를 잊어서는 안된다.

 

학교에서 기초와 중급 수업에서 지식만 전달하고 도제식 수업을 하지 못한다면 돈을 들여서라도 학원이 그 역할을 맡을 수 있다. 기초 학력조차 못 따라가는 학생들을 도제식 학원에서 가르치면 아주 효과적이다. 학원을 무조건 나쁘다고 보는 관점은 잘못된 통념에 기초한 생각으로 전혀 사실에 부합 하지 않다. 창조적 전문가와 기술자가 주축이 되는 조직은 도제식 교육과 훈련의 원리가 적용돼야 함을 잊어서는 안 된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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