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오는 4월 총선을 앞두고 각 정당은 공정, 청년, 여성 등을 키워드로 표심을 겨냥한 인재 영입을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몇 년 동 안 한국 사회를 달궜던 ‘여성’이라는 키워드에 집중해 낮은 수준의 여성 정치대표성을 높이는 방안으로 선출직 선거 후보자의 성비를 ‘남녀 동수’로 의무화하는 ‘남녀동수제’ 도입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여성 정치대표성 확보’라는 과제
남녀동수제는 여성 후보자와 남성 후보자를 동수로 추천하는 제도다. 여성의 정치대표성을 높이기 위한 조치로, 우리나라에서는 2005년 8월부터 국회의원 및 지방의원 지역구 총 수의 30%를 여성후보자로 추천하도록 권고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고, 2010년 1월부터 지역구 지방의회의원선거에서 여성후보자 1인 이상을 의무적으로 공천하는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2012년 국제의원연맹(IPU)은 이보다 더 나아가 “각국의 의회는 여성의원의 수를 확대하고 의회 내에서 여성의원의 지도력을 제고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마련”, 2012년 제 127차 IPU(국제의원연맹) 총회에서는 ‘성인지의회 행동계획 (Plan of Action for Gender-Sensitive Parliaments)’을 만장일치로 채택하도록 각 국가에 촉구했다. 하지만 여성 후보자는 지난 6·13 지방선거에서 광역의원후보 1,886명 중 274명(14.52%), 기초의원후보 5,318명 중 992명 (18.65%)에 그쳤다. 특히 여성 추천 의무조항이 없는 지역구 국회의원선거 및 자치단체장 선거와 관련해서는 20대 지역 구국회의원후보자 934명 중 98명(10.49%), 광역단체장후보 71명 중 6명(8.45%), 기초단체장후보 749명 중 35명(4.67%) 에 불과했다.
이에 지난해 1월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의원(현 중소벤처기 업부 장관)은 남녀동수제 도입을 골자로 하는 공직선거법 개 정안을 발의했다. 개정안은 국회의원선거와 지방의회의원선거에 후보자를 추천하는 정당은 지역구 전체의 30% 이상을 추천하도록 노력하는 것이 아니라 아예 전체 지역구 후보자 ▲ 역대총선 결과 여성 국회의원의 수와 비율 ▲2018 지방선거결과 여성당선자의 수와 비율 50% 이상을 여성후보자로 추천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과소대표되는 여성
우리나라는 다른 선진국과 비교해 국회와 지방의회의 여성 의원 비율이 낮아 여성이 정치적으로 과소대표되고 있는 현실이다. 지난 제20대 총선 결과 여성 당선자는 전체 300명 국 회의원 가운데 51명으로, 전체 17%였다. 이는 47명의 여성의원이 당선된 제19대 국회에 비해 다소 증가한 수치이지만 남녀 성비에 비해 낮은 수치다. 지방의회는 국회보다 여성의원 비율이 높지만, 여전히 인구 구성비에는 미치지 못한다. 여성할당제 도입 이후 국회와 지방의회에서 여성 의원의 비율은 지속해서 증가하고 있지만, 여성 국회의원 비율은 OECD 회원국 평균보다 10%p 이상 낮아 여성의 정치대표성 확대를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이유다. 2017년 기준 OECD 회원국의 여성의원 비율은 평균 28.8%로 한국보다 여성의원 비율이 낮은 국가는 36개 회원국 중 5 개국에 불과하다.
‘빠리테’(La Parité), 동등·동격·동률
프랑스는 1970년부터 여성의 정치 진출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하면서 꾸준히 여성의 정치대표성 확보를 위해 노력해왔다. 프랑스는 역시 여성의 사회진출이나 경제적 성취에 비 해 여성 의원의 비율이 낮은 편이었다. 첫 여성의원이 배출된 1945년 이후 50여 년간 여성 하원의원은 전체 의석의 10%에도 미치지 못했다. 프랑스는 1997년에야 하원에서 여성의원 ▲ 프랑스의회 47 비율이 10%를 상회하는 등 여성의 정치대표성이 낮은 국가 였다. 이에 1982년 하나의 성별이 일정 비율을 넘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포함한 선거개혁법안을 마련해 국회를 통과했지만, 헌법재판소의 위헌결정으로 법 개정으로 이어지지는 못했다. 하지만 프랑스는 여성의 정치진출 확대를 위해 아예 헌법을 바꿔버렸다.
1999년 개헌을 통해 ‘헌법’ 제3조에 “법은 선출직 공무원과 선출직 의원직에 여성과 남성이 동등하게 진출하도록 한다”는 규정을 포함시켰다. 또 제4조에 “정당과 정치 집단은 법이 정한 조건하에서 이 원칙을 현실화하도록 노력해야 한다”는 내용을 담았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2008년 헌법을 한 번 고쳐 국가가 남녀평등을 위해 노력해야 할 분야를 정치 분야를 넘어 사회분야로 확대했다. 개정헌법은 “법률은 남녀가 선거직과 그 지위는 물론 직업적·사회적 직책에 대해서도 동등하게 다가설 수 있도록 노력한다”라고 못 박았다.
프랑스는 헌법 개정 이후 2000년 일명 ‘빠리테법(La Parité)’ 이라고 불리는 법률을 제정해 동 법률의 적용을 받는 모든 선거에서 여성 후보를 남성과 동수로 추천하도록 했다. 정식 명칭이 ‘선거직에서의 남녀 간 평등한 접근을 이루기 위한 법’인 빠리테법은 소수자에 대한 우대정책이 아니라 남녀 양쪽의 기회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법이다. ‘빠리테’는 말 자체가 동등, 동격, 동률을 의미한다. 빠리테법의 적용을 받는 선거는 지방의원선거와 하원의원선거, 유럽의회의원선거, 상원 비례대표 선거다. 비례대표 선거의 경우 의무조항을 준수하지 않으면 정당의 후보자 명부를 접수하지 않는다. 소선거구 다수대표제로 실시되는 하원의 원선거에서는 여성할당 비율을 지키지 않는 정당은 국고에서 지원되는 정당보조금이 삭감된다.
빠리테법은 2000년 제정 이후 여러 차례 개정되면서 적용 범위를 확대하고 관련 규정을 강화해 같은 법의 적용을 받는 모든 선거에서 여성의원 수와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지역구선거와 비례대표선거를 모두 실시하는 상원의원 선거에서도 여성의원 비율이 증가하는 추세다. 빠리테법 제정 직후 선거인 2002년 총선 결과 여성의원 비율은 12.4%로 이전 선거인 1997년 선거의 10.9%에서 크게 증가하지 않았지만, 최근 선거인 2017년 총선 결과 하원의 여성 의원 비율은 39.6%로 IPU 통계에 따르면 2019년 12월 현재 전 세계 193개국 중 18위를 차지했다.
獨 브란덴부르크 주(州)의 남녀동수규정 도입
2019년 1월 31일 독일 브란덴부르크 주의회(Brandenburger Landtag)는 독일 최초로 정당이 제출하는 비례대표 명부 후보를 남녀동수로 구성하도록 강제하는 이른바 남녀동수규 정(Paritäts-Regelungen)을 담은 주(州) 선거법 개정안을 의결했다. 지역구와 비례대표선거 중 지역구선거는 제외하고 비례대표 명부후보만 남녀동수규정이 적용되며, 주(州)의 당원대표자 ▲ 빠리테법 시행 이후 여성 하원의원의 비율 48 총회(Landesversammlung)는 남성후보명부와 여성후보명부를 작성해야 한다.
각각의 명부는 여성과 남성을 교차해 순차적으로 정당의 명부순위에 배정해야 한다. 만일 남녀교차 할당을 준수하지 않는 정당의 비례대표명부는 선거위원회 (Wahlausschuß)에 의해 거부된다. 독일의 남녀동수규정 입법화 배경에도 여성의원 비율이 낮은 것에 대한 정치권의 문제의식이 크게 작용했다. 여성의 사회진출이 다양한 분야에서 활발함에도 정치영역에서는 여전히 남성에 비해 현저히 낮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브란덴부르크 주의회의 경우, 전체의원 88명(지역구 44명, 비례대표 44명) 중 여성의원은 2014년 34명(38.6%), 2019년 28명(31.8%)에 불과했다. 특히 브란덴부르크 주의회가 남녀동수할당을 법제화했다는 점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점이 크다. 우선 남녀동수법은 정치 적 소수인 여성의 정당 및 의회진출을 확대하는 기폭제로 작용할 수 있다. 또 양성평등 관련 주제들에 대한 관심이 확산되는 계기가 되고, 향후 여성의 정치참여 활성화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
브란덴부르크 주의 남녀동수법은 튀링엔(Thüringen) 주의회의 비례대표 남녀동수법 통과에도 영향을 주면서, 현재 독일에서 진행되고 있는 남녀동수할 당법안의 법제화 논의를 활 성화하는데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남녀동수법은 단순히 성비의 평등을 넘어 그동안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된 여성의 권익을 신장시켜 사회 각 분야에 서 양성평등의 문화를 구현할 수 있는 젠더민주주의의 실질화에 기여할 것으로 평가되기도 한다.
물론 독일에서도 프랑스와 같이 위헌 논란이 일고 있다. 정당의 자유와 선거의 자유·평등 원칙의 침해한다는 것이다. 또 민주주의 원리에서 의원이 대표하는 것은 일부 집단이 아닌 전체 국민, 즉 의원은 각계각층의 의사를 집합적으로 대표하기 때문에 여성이 사회구성원의 절반이므로 이들을 대표하는 의원도 그에 비례하여 대표되어야 한다는 주장은 타당하지 않다는 주장도 있다. 반면 정당은 민주주의 원칙을 준수할 의무가 있고, 민주주의 원칙은 모든 국민, 즉 남녀가 ‘동등하게(equally)’ 참여하고 대표되는 것을 전제로 하기 때문에 위헌이 아니라는 주장이 맞서고 있다.
개헌 앞서 사회적 담론 형성이 먼저
국회 입법조사처는 최근 보고서에서 “남녀동수제의 법제화는 처음부터 제재수단을 부과하기보다는 인센티브제도와 연계하는 방안을 검토해볼 필요가 있다”고 제언했다. 보고서는 “현행 공직선거법은 여성할당제를 규정하면서 비례대표선거의 경우 의무조항으로 규정하고 있고, 지역구선거 의 경우 국회의원선거에서는 여성추천을 권고조항으로, 지 방의회선거에서는 후보등록 무효화와 연계한 의무조항을 명시하고 있다”라며 “남녀동수제를 도입할 경우 의무조항으로 하되 제재보다는 정당국고보조금 확대 등의 인센티브제와 연계해 여성후보 추천을 유도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고려 해볼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보고서는 또 정당차원에서 여성 인적자원의 발굴과 육성을 강조했다. 보고서는 “남녀동수제의 취지를 살리고 여성의원 의 실질적 확대를 보장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충분한 수의 여 성후보를 확보하는 것보다 실제 선거에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여성후보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다”라며 “여성 후보의 발굴과 육성 단계에서부터 지속적인 투자와 교육프로그램 운영에 역점을 두어야 할 한다”라고 했다.
프랑스와 독일의 경우처럼 남녀동수제 도입 시 발생할 수 있는 위헌 논란에 대해서는 “사회적 담론을 형성과 총의를 수 렴하는 과정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위헌논란을 해소하기 위해 프랑스와 같이 법 개정에 앞서 개헌을 통해 남녀동수제의 법적 근거를 마련하는 방 안에 대해 논의할 필요가 있다”라며 “개헌을 남녀동수제의 위헌소지를 해소하는 수단으로 인식하기보다는 개헌논의에 앞서 사회적 담론을 형성하고 총의를 수렴하는 절차가 선행 돼야 한다”고 했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