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경제가 중국경제의 거대 내수시장과 저임금, 상당한 기술력을 갖춘 중국의 공세를 이겨낼 수 있을 것인가. 또한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기초과학기술이 탄탄한 일본경제의 경쟁력을 어떻게 대처해 나갈 것인가, 우리나라 기업가들, 정책자, 전문가들이라면 오랫동안 고심해온 문제다. 하지만 아직 눈에 띌 만한 대처방법을 발견하지는 못한 듯하다. 기자가 ‘콤포지션 경제학’이란 제목으로 샌드위치에 처한 한국경제의 활로를 위한 프레임을 제시하고자 한다. 한국경제의 요소인 경제정책은 물론 기업, 개인, 교육 및 훈련 등에 관해 콤포지션이란 프레임으로 하나하나 풀어볼 것이다. 이번호는 첫 번째로 ‘왜 콤포지션인가’라는 제목으로 기본 개념과 대강을 설명하고자 한다.
한국경제는 지금 시스템과 요소면에서 크고 작은 중병 에 걸려 있다. 한국경제가 그나마 수출로 버티고 있는 것은 극소수의 우량기업들 덕분이다. 그 우량기업들 중엔 세계에 내놓아도 전혀 손색이 없는 중소기업들도 있지만 재벌 계열의 대기업들도 당연히 포함된다.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면서 재벌계열의 대기업들을 압박을 하고 있다. 미중무역전 쟁으로 수출로 지탱하던 우량기업들이 흔들리고 있다. 기업이란 이익을 내지 못하면 시장에서 즉각 퇴출되는 존재이다. 여기에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란 충격이 우리 경제에서 가장 취약한 말단 신경조직들을 산산이 파열시키 고 있다.
지식과 아이디어, 모델, 전략이 통하던 시대는 지났다
트럼프가 중국에 무역전쟁의 선전포고를 하기 훨씬 전부터 사실상 전세계는 이미 경제전장으로 번했다. 글로벌기업이나 내수 중심형 혹은 수출형 대기업이나 첨단기술형 기업이나 동네 편의점이나 치킨과 커피, 빵집의 프랜차이즈 가맹점이거나 다급하긴 마찬가지다. 코앞에서 살점이 날아가고 피흘리는 육탄전이 벌어지는데, 무슨 한가한 경영전략 타령인가. 한국의 정치인들과 노동자들은 아직도 대마불사란 신화를 믿고 있는 듯하다.
홍영표 민주당 대표가 대기업의 사회적책임 운운하며 고용을 늘리고 사회공헌을 하라는 발언을 하고 있다. 심심찮게 언론에 보도되는 미국과 유럽, 일본의 글로벌 기업들의 인수·합병(M&A)은 말만 그럴듯한 표현일 뿐 구조조정을 하는 것이다. 원색적으로 말하면 이전 사업아이템으로는 곧 망할 것 같으니까 미리 선수를 쳐서 새판을 짜보는 일종의 금융기법을 활용한 사업재구성이다. 인수·합병의 목표는 사업의 초점을 재조정하는 것이지만 그 과정에서 인원 정리를 하며 군살을 확 빼는 것이다.
지금 한국에서 위기로 내몰리고 있는 자동차, 조선 등 거대기업들이 도저히 수익을 낼 도리가 없는 지경에 이르면 미국계와 중국계 등 글로벌 기업들에게 인수·합병되는 수밖에 없다. 대우와 쌍용자동차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현재로선 주주의 이익을 철저히 따지는 미국계에 인수되기보다는 전략적 판단으로 과감하게 투자를 감행하는 중국계에 인수될 가능성이 더 높다고 기자는 보고 있다. 대우조선해양에는 수조원의 구제금융이 투입된 바 있다. 대기업노동자들을 연명시키기 위해 쏟아 붓는 구제금융의 돈이 청년들에게 사용된다면 얼마나 보람된 일이 될 터인가. 조직된 극소수의 힘에 끌려가는 정치권을 보면 그들이 말하는 사회정의는 정확히 누구를 위한 것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한국경제가 허허벌판에서 건설업을 하고 경공업을 시작하며 모든 것들을 새로 시작할 때는 지식과 아이디어가 중요했다. 개도국단계를 지나서 중진국으로 진입할 무렵에는 경영전략과 비즈니스모델 등이 한국기업들을 업그레이드 하는데 기여했다. 1990년대까지는 그런 경영 컨설팅기법이 유용 했으리라 본다. 물론 경영전략과 비즈니스 모델 등이 여전히 필요하고 앞으로도 유용할 것이다. 하지만 경영전략과 비즈 모델은 이제는 ‘지식’에 속한다고 본다. 한국경제는 선진국 진입의 문턱에 있다. 20년 넘게 선진국의 문턱에서 맴돌고 있는 것은 한국경제의 주요 구성원들이 ‘지식’을 넘어서지 못하기 때문이다.
지식과 기술과 노하우의 창의적 콤포지션(Composition) 역량
소득3만 달러를 막 넘어선 한국경제는 자기만의 독창성으로 만들었거나 아니면 적어도 품질 면에서는 세계 최고 정상 수준에 오르지 못하면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없는 환경에 맞닥뜨려 있다. 정상급 경제와 기업, 조직, 개인은 지식과 기술, 노하우의 3요소를 고루 갖추고 있다. 그들은 3요소를 바탕으로 크고 작은, 다양한 창의성을 발휘해 세상의 수요에 부응한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로 만들어 공급하고 있다.
이를 작곡가가 음악을 작곡하듯 3요소를 창조적으로 융합해 감동과 영감을 불러일으키는 ‘콤포지션’ 역량이라고 부를 수 있다. 특히 지속적인 콤포지션 역량을 유지하고 있는 경제와 기업, 조직은 철학적 가치를 굳건히 하는데 게을리하지 않으며 꿈과 비전에 대한 뚜렷한 상을 가지고 있다. 무엇보다도 그들은 문화적 매력과 향기, 카리스마로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는다. 이런 콤포지션의 시각으로 우리 경제와 기업들을 보면 허점투성이라는 것을 알 수 있고 동시에 우리가 어디로 나아가야 할지를 가늠할 수가 있다. 이와 같이 콤포지션이란 프레 임으로 하나의 국가 경제를 들여다 볼 수도 있고 기업별로 또는 산업별, 업종별로도 분석할 수 있다.
지식 중심 사고를 가진 창업자들 많아
축구에 대한 지식이 풍부하다고 해서 축구를 잘하는 선수가 될 수는 없다. 손흥민 선수보다 축구에 대한 지식을 많이 가진 사람들이 꽤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들은 손흥민 선수가 흘린 땀과 고뇌, 귀중한 경험이 없기 때문에 손 선수와의 비교란 천부당만부당이다. 손 선수는 축구지식도 많겠지만 무엇보다 발과 머리 기술, 수많은 경기에서 얻은 노하우가 발군이다.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어떤 분야의 지식을 아는 것만 가지고 기술도 노하우도 전혀 없이 창업하는 경우가 비일비재다.
우리나라의 창업자들의 90% 이상이 지식만 믿고 뛰어드는 것 같다. 지식만 갖고 창업하면 백전백패다. 아마도 수년 걸려 성공한다고 해도 그 사업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익힐 만큼 시간과 돈을 투자하고 고통을 겪고 난 후의 일이다. 기존의 사업에서 성공한 사람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면서 자칫 콤포지션 역량을 경시하고 성급하게 뛰어드는 경우를 흔히 본다. 그 사업가는 그동안 힘들게 쌓은 부와 명성을 다 잃어버릴 수도 있다. 기존 사업에서 성공했다는 자부심이 지 나쳐 새로운 사업에서 지식만 충분히 숙지했다고 판단하고선 신사업을 전개한다.
아무리 비슷한 아이템이라도 생태계가 다르고 고객과 경쟁자들이 다르고 제품과 서비스의 특성 과 역할에서 차이가 나면 다른 세계이다. 그러므로 그에 필요한 기술과 노하우를 새롭게 구축하지 않으면 안 된다. 사업성만 좋다고 해서 그 사업을 해서는 안 된다. 그 사업에 내가 어느 정도 기술과 노하우가 있는지 따져보고, 굳이 하려고 한다면 그 사업에 대해 잘 아는 기술자와 경험자들을 영입해야 한다.
그럼에도 왜 사람들은 섣불리 알량한 지식만 믿고 신규사업을 벌이려 하는가. 심리학적으로 똑똑한 사람일수록 모르는 분야의 지식을 새로 알아나가는 것에 흥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지적 호기심이 충만한 것까지는 좋은데 지식을 하나씩 얻어가다 보면 어느 순간 다 안것 같은 착각이 든다. 오랜 반복 훈련과 인내, 경청을 통하는 길 외에는 얻을 수 없는 기술과 노하우를 건너뛰고 싶은 충동이 점점 강해진다. ‘기술, 노하우 별 거 아니야, 나의 기발한 아이디어, 전략이면 충분해’ 하 는 자만심이 고개를 들게 된다. 어설픈 투자자들이 동참 의사를 밝히면 위험 지대에 진입하게 되는 것이다. 지식과 기술, 노하우를 가지고 있다고 성공의 보증수표가 발행된 것은 아니다. 창의적인 융합으로 시장의 수요에 부응한 경쟁력 있는 아웃풋을 내야 한다.
중소기업일수록 기술과 노하우가 중요하고 대기업일수록 콤포 지션 능력 있어야
문재인 정부가 들어서고 참으로 희한한 일이 벌어지고 있다. 노동자 좋으라고 최저임금 인상하고 근로시간 단축하려는데, 중소기업들이 짐 싸들고 한국을 떠나고 있다. 냄비 기질의 한국인의 행동양식을 반추해보면 정말 이대로 가다간 한국기업들의 동남아 엑소더스가 일어날지도 모르겠다. 임금 오르고 근로시간 줄어들어 좋다고 표를 찍어줬는데 일자리가 날아가 버리게 생겼다.
하지만 이런 결과를 모두 문재인정부 탓으로 돌리는 거는 지나치다고 본다. 낮은 임금과 긴 근로시간에만 의존하고 기술과 노하우 축적과 창조적 융합을 등한히 한 중소기업주에게도 책임이 크다. 중소기업 취업을 꺼리고 기술교육과 훈련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교육당국과 교육계의 책임도 막중하고, 그리고 그저 자식들을 대학 입시로만 내몬 학부모의 맹신도 오늘날 모든 사태의 책임에서 피할 수 없다.
좀 다른 시각으로 보면 낮은 임금과 장기간 노동에만 의지하는 중소기업이라면 사실 선진국경제를 지향하는 한국경제에선 부적격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임금제대로 주고 직원들 의 삶의 복지도 살피는 기업이라야 독일식 히든 챔피언이 나올 수 있다. 이제는 기술과 노하우 축적과 연구개발에 집중 하면서 창조적 제품과 서비스, 콘텐츠 생산과 공급으로 세계 시장을 파고들어야 할 때다. 문재인 정부의 친노동 정책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중소기업주는 자신의 기존 사고와 관행을 되돌아볼 때다.
글로벌 기업은 문화적 매력이 지속성 보장
두산인프라코어가 납품기업이 굴착기 부품 납품가를 낮춰 주지 않자 확보해놓은 부품도면을 다른 업체에 넘겨주고 제작케 했다. 그러면서 원래 납품하던 기업을 새 업체로 교체했다. 공정거래위는 두산인프라코어에게 3억7,000만원의 과징금을 때렸다. 우리나라 대기업들 중에서 덩치만 크고 자체 기술과 노하우는 부실한 채 중소기업들의 기술과 낮은 납품단가에 의존하는 껍데기들이 적지 않다.
두산인프라코어의 자체 기술이 뭔지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으나 납품업체의 기 술을 가벼이 여기고 더욱이 납품업체의 도면을 타 업체에게 넘겨 제작케 한 것은 부도덕하기 짝이 없다. 부품 수가 수백 개 넘어가면 모든 부품을 자체적으로 다 만들 수는 없을 것이다. 설사 만든다고 해도 원가 경쟁 상 납품기업들이 필요하다. 이때 대기업의 경쟁력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한국의 대기업들이 납품단가 낮추는 것 외에 딱히 경쟁력 이 떠오르지 않는다면 현재와 같은 불공정거래행위는 근절 되기 어렵다.
대기업에 필요한 것은 콤포지션 역량이다. 끊임 없이 시장 수요를 조사하고 고객들이 느끼는 불편한 점, 개선할 점을 수집해야 한다. 시장 변화에 한 발 앞서 신제품과 서비스를 출시하며 납품중소기업들과의 긴밀한 협조를 통해 혁신적 제품개발에 공동보조를 발맞춰 가야 한다. 이런 창조적 피디 능력이 바로 콤포지션 역량이다. 납품기업 쥐어짜기가 장기인 대기업은 이제 시장에서 퇴출될 시점이다. 기업의 문화적 매력이 강조되다 보니 어떤 전문가는 스토리텔링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렇게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마는 스토리텔링은 하나의 요소일 뿐이다. 그럴듯한 스토리텔링 만든다고 금방 매력적 이미지가 형성되는 것이 아니다.
국내 신문에 거의 매달 국내 대기업들의 사회공헌 기사가 나가고 있지만 ‘착한’ 이미지가 형성되고 있는지는 모 르겠다. 문화적 매력과 카리스마는 총체적 노력이 긴 시간 동안 기울여졌을 때 가능하다. 여인의 매력을 과학적으로 분석할 수 있을까. 설사 과학적으로 분석한다고 해도 매력의 요소들을 조각조각 맞춘다고 해도 매력이 재현될지 의문이다. 우선 마음이 가장 중요할 것 같고 자신의 제품과 서비스의 역할에 적합한 매력 개발과 유지에 집중하는 게 현명하다. 모든 사람들의 눈에 다 아름답게 보이는 사람은 곧 싫증나는 매력이 될 공산이 크다.
한국의 문화 이미지 부각해야
한국경제의 버팀목인 삼성전자의 갤럭시와 반도체 판매에 먹구름이 끼고 있다는 소식이다. 삼성전자는 아무리 어렵다고 해도 휴대폰과 반도체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중국이 저 가공세, 물량공세로 나오면 나올수록 삼성전자는 유리하다고 본다. 중국을 제외한 다른 나라사람들은 거대한 중국기업과 경제의 규모에 공포를 느끼고 있다. ‘거대함’과 ‘과도한 욕심’ 자체가 괴물의 속성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은 삼성전 자에게 유리하면 유리했지 결코 불리하지 않다. 버티면 이길 수 있다. 삼성전자의 최고 전략은 한국의 문화 이미지를 부각하는 것이다. 소박한 조선백자와 같은 한국의 미, 자연친화적인 정신과 물질의 조화, 전쟁과 가난, 식민지 피지배의 굴종의 역사를 견뎌온 인내와 겸손, 평화의 이미지 등 한국에는 매력적 자원이 풍부하다. 이런 것들 중에 한 가지만 골라서 기업의 매력으로 가꾸기만 하면 된다. (9월호에 계속)
MeCONOMY magazine August 20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