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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론테크’(Gerontech)를 준비하라

- 노화에 대한 관점을 바꾼 과학기술 ‘제론테크’ - 노인을 수동적 존재 아닌 ‘활동적 노화’(Active Ageing)로 - 일본, 의료·간호·건강 부문에 정보통신기술 적극 활용 - 보건·의료에 치우친 국내 고령사회 ICT 성장전략

 

<M이코노미 문장원 기자> 우리나라는 세계에서도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사회다. 한국사회는 지난 2017년 65세 이상 고령 인구가 총인구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 이상인 ‘고령사회’에 접어들었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향후 25년 후 우리는 세계 1위의 고령 국가가 될 전망이다. 고령사회가 되면서 자연스럽게 노인건강 문제는 물론 사회 참여 저하, 치매 등의 문제가 주요한 과제로 떠오르면서 우리도 이제 ‘제론 테크’(Gerontech), ‘노인 공학’에 대해 관심을 가질 때가 됐다. 

 

노인을 위한 과학기술 ‘제론테크’


제론테크는 ‘제론테크놀리지’(Gerontechnology)의 줄임말로 노인을 위한 과학기술을 의미한다. ‘제론’(Geron)은 ‘old man’을 뜻하는 그리스어로 제론테크는 노인학(Gerontology)에 공 학, 수학, 물리학, 생물학 등 다양한 과학 분야(Technology)를 융합해 노인문제의 해법을 찾으려는 다층적 학문이다. 이미 1990년대 고령화 인한 문제를 공학적으로 연구하고 해결하기 위해 유럽과 미국에서 처음 등장했다. 앞서 미국을 중심으로 노화와 기술발전, 노년층의 컴퓨터 사용, 노년층을 배려한 제품디자인 등 노인학과 공학기술을 접목하려는 시도가 확산됐고, 유럽에서 1989년 그라흐만스(Graafmans)가 노년층 관련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일 연구분야를 넘어 기술 분야와의 협력을 주장하며 최초로 제론테크를 언급했다.

 

이후 일상에서 노인의 활동 개선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을 논의하는 최초의 콘퍼런스가 1991년 네덜란드 에인트호번에서 개최돼 1997년 국제제론테크놀로지학회가 세워졌다. 제론테크가 집중한 부분은 노년층이 독립적인 생활과 사회적 참여를 지속할 수 있도록 건강, 주거, 이동, 커뮤니케이션, 여가 및 노동 등의 영역에서 예방적·보완적 공학기술 및 디자 인을 개발하는 것이다. 제론테크의 발전은 노인에 대한 사회 학적통찰을 과학기술에 접목해, 그동안 수동적이고 비활동적이며 의존적 존재로 노년층을 바라보던 기존 패러다임을 ‘활동적 노화’(Active Ageing) 관점으로 전환했다.

 

제론테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노년층의 학력과 자존감, 신체적·정신적 건강상태, 독립적인 생활을 유지하려는 태도 등 이 과거세대와 뚜렷이 구분되기 때문에 노인에 대한 기술적 접근이 질병·장애 치료 중심보다는 ‘인간다운 삶의 지속’이란 차원으로 한단계 높일 것을 주장하고 있다. 세계보건기구 (WHO)도 이를 받아들여 지난 2002년 “장수는 건강과 사회 적 참여, 안전을 지속적으로 영위하는 것이며, ‘활동적 노화’는 이런 비전을 성취해나가는 과정을 의미한다”라고 공식 선언했다.


노화에 대한 관점을 바꾸다


제론테크는 한마디로 노화라는 자연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을 획기적으로 바꾸었다. 신체적, 경제적측면만 고려되던 노 화에서 삶의 질, 정신적·육체적 웰빙, 사회적참여 등 종합적 인 관점에서 바라보고 해결책을 찾기 시작한 것이다. 그 영향으로 은퇴 이후에도 소비생활과 여가생활을 즐기며 적극적으로 사회활동을 하는 50·60세대인 ‘액티브시니어’, 연령과 사용 환경에 상관없이 ‘누구나 손쉽게 사용할 수 있는 디자인’을 지향하는 ‘유니버설 디자인’ 등 노년층의 독립적인 생활 을 지원하는 다양한 개념들이 생겨나고 관련 정책들이 추진됐다.

 

유럽연합(EU)도 2000년대 초부터 인구 고령화에 대한 중요성을 인식하고 유럽 각국의 현황을 분석, 정책방향을 제시하고 있다. 2001년 스톡홀롬에서 열린 유럽이사회에서는 고 령화문제에 대처하기 위해 각국에 연금제도 개혁 및 의료서비스 개선 등을 권고했다. 또 2005년 정상회담에서는 이를 주요 의제로 다루고 이듬해 회원국들이 인구구조의 변화와 고령화를 감당할 수 있도록 ▲인구구조 개편 ▲퇴직 연령 연 장 ▲생산력 향상 ▲이민자 수용 ▲적절한 수준의 사회보장 등 5가지 정책을 발표했다.

 

특히 EU는 고령화를 위기이자 새로운 성장의 기회로 여겼다. 고령층에 혁신적인 재화와 서비스를 제공해 이들의 삶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정보통신기술(ICT)산업도 함께 발전시키려는 정책을 도입했다. EU는 고령자에 대한 복지지출 규모가 GDP의 25%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상되자, 고령층 대상 소비 시장인 ‘시니어 마켓’과 ‘실버 경제’ 성장에 주목했다.

 

‘활동적 이고 건강한 노화(AHA)’라는 기치 아래 의료·보건뿐만 아니라 ICT를 활용한 주거, 이동성 개선 등의 연구개발 지원했으 며, 고령화 진입 속도와 비율이 높은 유럽국가 중심으로 ‘건 강한 노화’(Well Ageing) 관련 혁신적인 ICT 서비스 연구를 실행했다.


日, 스마트 사회로 고령화 사회 극복


우리보다 훨씬 먼저 고령화문제에 직면했던 일본을 보자. 일본도 고령화에 따른 사회적 문제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ICT 를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등 제론테크를 정책에 접목하고 있다. 일본 총무성은 2012년 ‘ICT 초고령사회 구상회의’를 통해 ‘스마트 플래티넘’(Smart-Platinum) 사회 비전을 제시했다. 스마트 플래티넘사회는 건강한 고령자가 경험과 지혜를 살려 젊은 세대와 함께 일하면서 생산활동과 사회 참여가 가능한 사회다.

 

일본은 고령자의 건강관리에 집중하며 건강한 고령자가 생산 활동에 지속적으로 참여할 수 있는 ‘활기찬 고령사회구축’ 지향하고 있다. 이를 위해 의료·간호·건강 부문에 ICT 활용을 적극 추진 중이다. 스마트폰과 같은 정보통신 기기의 발달로 실버세대의 ICT 활용능력 향상을 교육에도 집중적으로 투자하고 있다. ICT 를 활용한 새로운 워크 스타일 실현, 신체 기능을 보완해 주는 로봇 개발 등을 추진하고, 의료·간호·건강 분야 데이터를 공유하고 활용하기 위한 기초 인프라 전국적으로 구축했다.

 

일본 정부가 2016년 발표한 ‘제5기 과학기술기본계획’에서는 초스마트 사회, ‘Society 5.0’을 언급하며 초고령화에 대응해 지속가능한 사회를 만들기 위한 전략을 제시했다. 저출산·초고령 사회에서도 도시 및 지역사회의 활기찬 삶이 가능하도 록 ICT를 활용한 교통시스템 구축, 지역 포괄적 라이프케어 시스템 구축 등이 핵심이다.

 

특히 제조·의료·간호 분야의 로봇 기술력에 힘입어 고령자 간 호·돌봄 로봇, 애완견 로봇 등을 적극 개발하고, 국제표준화 기구(IOS)의 생활지원로봇 표준규격으로 채택되는 등 일본은 로봇 분야에서 상당히 앞선 상태다. 고령사회의 현안을 ICT기술로 해결하고 디지털 산업발전의 기회로 삼으려는 추세는 일본 등 초고령 사회 진입국은 물론 신흥국으로도 확산 전망이다.


‘활동적 노화’ 생태계 만들어야


우리나라 역시 고령사회 대응전략으로 노인복지 차원에서 부처별로 각기 추진되고 있으며 보건·의료 서비스 중심 사업들이 그 중심에 있다. 2006년부터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 획’을 5년 단위로 수립해 시행 중이다. 제2차 기본계획에서는 EU의 ‘활동적 노화’와 유사한 ‘고령사회 삶의 질 향상’이라는 개념을 도입했다.

 

보건복지부, 산업통상자원부 등 각 부처는 원격의료, 헬스케어 신(新)시장 창출, ICT활용 의료서비스 등 고령화 대응 ICT 산업지원 기본계획을 마련해 추진해 왔다. 또 고령친화산업의 육성을 위해 제정된 ‘고령친화산업진흥 법’이 4차례 개정 이후 2013년부터 시행되면서 정보, 여가, 금융, 의약품 등의 분야에서 실버산업 육성에 집중하고 있다. 2016년부터 시행하고 있는 제3차 기본계획에서는 고령친화산업의 신성장동력 육성, 고령자 친화적 주거환경 조성을 중점 추진 중이다.

 

신성장동력 육성 분야는 유망 원격의료 서비스 모델 발굴, 스마트 헬스케어 사업모델 개발, 수요 연계형 데일리 헬스케어 단지 조성 등 IT와 연계한 스마트 케어와 고령 친화 식품 산업 등의 육성이 핵심이다. 아울러 건축물·대 중교통에서부터 생활용품, IT기기 등 전 산업에 걸쳐 유니버설 디자인을 위한 기술을 개발하고 고령친화제품·서비스 표준화 등을 추진한다. 고령자 친화적 주거환경 조성분야는 고령자 주거 지원 정책을 생애주기별로 쉽게 찾아볼 수 있는 원스톱 주거지원 안내서비스(마이홈 포털) 구축이 포함됐다.


하지만 부처별로 추진된 세부사업을 살펴보면 보건복지부를 제외하고는 단독 사업내용은 확인하기 어려운 실정이다. 보건복지부 사업도 헬스케어 등에만 치우쳤다는 지적도 나온다. 고령화 이슈의 범위는 넓어졌으나 건강 분야를 제외한 분 야에서 실효성 있는 연구 성과를 도출하기 위한 노력은 아직 취약하기 때문이다. 특히 사회 인프라개선 관련 연구개발이 부진하다.

 

이에 대해 박성수 KB금융지주경영연구소 연구원은 “보건·의료에 치우친 국내의 고령사회 ICT 성장전략을 다각화하고 연구 단계에서 산업화 단계로 도약하기 위해서는 제론테크 관점에서 노인을 이해하고 활동적노화 생태계 조성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이어 “제론테크는 노인학의 기반과 사회적 인식이 약한 국내에서 아직도 생소한 분야다”라며 “따라서 독립적이고 활기찬 노년생활과 공학기술의 연계에 대한 사회적논의를 확장할 필요하다”고 했다.

 

박 연구원은 “제론테크엑스포나 민간의 제론테크를 주제로 한 강연·토론 등이 인식 전환에 기여할 수 있을 것”이라며 “활동적 노화와 관련한 ICT 기술들을 사업화하기 위해서는 정부의 부처를 초월한 조직이 EU의 ‘ACTIVAGE 프로젝트’와 같은 수요자와 공급자, 개발자와 사업자 모두가 참여하는 리빙랩(일상생활의 실험실) 생태계를 조성하고 비즈니스 모델을 창출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MeCONOMY magazine December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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