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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의 정신문화를 찾아서(11) 퇴계의 ‘리’ 사상, 과학시대 종교론으로 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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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이코노미 이상용 수석논설주간> 작년에 모 한국철학 관련한 세미나에 참석할 일이 있었다. 그 자리에서 한 역사담당 교사가 연단에서 이제 “리기(理氣)‘논쟁이니 하는 말을 그만했으면 좋겠다. 요즘 학생들이 한자도 모르는데 나도 이해하기 어려운 조선성리학의 리기론과 사단칠정론을 어떻게 알아 듣겠느냐‘는 취지로 말했다. 요즘 들어 한국 철학이 초중고교 교과서에서 푸대접을 받는다고 하는데 그 원인은 ’조선성리학‘이 학자 들의 논문 속에서나 거론되고 일반인에게 쉽게 전달되지 못하는 탓도 적지 않을 것이란 짐작이다.

 

조선성리학은 주자학을 기초로 조선에 꽃피운 성리학이다. 주자학은 우주·자연과 인간 세상의 근본 원리를 리와 기로 설명하고 인간 심성에서부터 정치·사회의 통치·운행 원리로까지 확장한 사상체계이다. 주자학은 ‘리’와 ‘기’의 개념만 이해하면 거의 아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리’란 우주자 연과 인간 세상의 모든 사물과 현상, 인간의 마음과 행동을 지배하는 근본 이치, 원리를 말한다. 또한 ‘리’는 그러한 존재 원리일 뿐만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해야 할 윤리적 도리를 의미하기도 한다.

 

‘리’와 유사한 개념으로 ‘태극’이 있다. ‘태극’은 ‘천지만물의 각각의 개별자에 내재돼 있는 리를 하나로 합친 궁극의 리’를 말한다. 예를 들면 하늘에 떠 있는 달을 태극이라고 한다면 강과 호수, 내 앞의 물 잔에 비친 달은 개별적 리다. 태극은 천 (天) 혹은 천리, 그냥 리로도 쓰인다. ‘기’는 우리의 눈에 보이는 모든 사물과 인간과 생물, 천지만물의 구성 요소를 말한다. 주자성리학은 기가 흩어지고 모아져서 이런 것들이 만들어진다고 본다.

 

자연현상과 인간의 오욕칠정도 기로 이해한 다. 기에서 음양이 나오고 오행과 64괘가 나오는 것으로 파악한다. 주자학은 태극을 ‘절대선’으로 가정한다. 인간의 본성, 즉 성 (性)은 태극과 천의 절대선을 부여받은 것으로 생각한다. 이 태극의 절대선이 인간 본성과 인간 세상에 어떻게 나타나는 가를 이해하려면 성리학의 체용론을 알 필요가 있다. 체(體)는 본체, 실체를 말하고 용(用)은 작용, 현상을 지칭한다.

 

체용은 비유로 많이 설명되는데 이를 테면 바다는 체요, 파도는 작용이라는 식이다. 마음의 체는 성(性)이고, 용은 정 (情)이다. 인의예지(仁義禮智)는 체고, 칠정은 용이 된다. 주자는 태극의 동정(動靜), 즉 리의 움직임과 고요함으로 운동 하는 성질을 인정했다. 여기에 퇴계는 한 발 더 나아가 리가 동하고 발하고 이른다는 리동(理動), 리발(理發), 리도(理到)를 주장하기에 이른다. 퇴계는 이같은 리의 작용성을 리의 신묘한 ‘용’이라고 설명했다.

 

우주·자연과 인간세상에 작용 의미

 

절대선인 태극이자 리가 ‘선(善)’ 을 구현하기 위해 우주·자연과 인간 세상에 작용할 수 있음을 의미한다고 해석할 수 있다. 주자는 리가 세상만사를 주재한다고 하면서도 인격적 존재로 보지 않고, 리를 원리, 법칙, 표준으로 이해했다. 이에 대해 퇴계는 리의 능동성을 강조해 리가 기를 부리고 명령을 내리기도 한다고 말했다.

 

경북대 영남문화연구원 안유경 박사는 퇴계의 리는 “현상계 를 초월한 절대자에 해당된다”고 말했다. 또 “퇴계는 ‘리란 지극히 허하면서도 지극히 실하며, 지극히 없으면서도 지극히 있으며, 움직이면서도 움직임이 없고, 고요하면서도 고요함이 없다’고 했는데, 퇴계의 리를 ‘신(神)’으로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퇴계의 리와 아리스토텔레스의 신과의 접점」에서, 동서인문학, 2019.02). 안유경 박사는 「갈암 이현일의 철학 사상」, 「리의 철학」, 「주역전해(상하)」, 「유교는 종교인 가」, 「퇴계학파의 심성론」, 「성리학이란 무엇인가」 등의 저·역서를 펴낸 중견 유학 연구자다.

 

우리나라에 유학연구자 들이 많이 있으나 한문 원적과 중문에 밝고 유학 외에 불교 학과 서양철학에까지 영역을 넓히며 연구주제를 심화해가는 실력파 연구자로 평가받고 있다. 안유경 박사를 김포에서 만났다. 소탈한 모습에서 늘 만나던 사람처럼 편안하게 느껴졌 다. 요즘 한국사회가 많이 각박해져 소탈한 사람은 점점 만나기 힘들어지고 있는데 기자도 여유를 갖고 편하게 대화를 나눴다. 기자가 궁금한 것은 한 가지, ‘신(神)’으로 볼 수도 있다는 의 미가 정확히 무슨 뜻인지를 물었다.

 

안유경 박사는 퇴계의 리는 인격적 존재는 아니지만 퇴계파 학자들은 ‘활물(活物)’ 로 표현했다고 말했다. “리는 죽은 게 아니고 살아 있는 활물이라는 것이죠. 퇴계는 리를 말을 타고 있는 사람에 비유했습니다. 사람이 말을 타고 부리듯이 리가 세상만사인 기를 주재한다는 거죠.”

 

안유경 박사는 “동양에서는 신은 섬기는 존재로서 기복적 요소를 가지는데 퇴계의 리는 섬기는 존재라기보다는 인간이 따르는 절대자의 존재로서 기복성은 없다”고 말했다. 퇴 계의 리는 인격적 존재인 ‘상제’까지는 아니지만 당대 유학자들과는 달리 우주만물과 인간사를 주재하는 절대자의 존재라고 인식했다는 것이다. 이런 리의 주재성은 기독교에서 ‘하나님이 역사를 주관한다’는 명제와 통하는 사상이 아닐 수 없다. 퇴계의 절대자적 존재로서의 리 인식은 자연스레 그의 경 (敬) 철학으로 발전한 것으로 보인다. 퇴계는 마치 세속의 수 도자처럼 경의 철학을 일생에 걸쳐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몸소 실천해 보였다.

 

종교학에서 본 퇴계 리의 함의

 

인류의 종교는 유일신 종교든 다신교든 각각 하나의 가설적 세계관을 믿는 것이다. 그 속에는 지상에서의 인간 삶뿐만 아니라 죽음 이후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으며, 유일신과 다신 들은 인간들의 삶에 개입하는 인격적 존재다. 또한 인간은 유일신과 신들에게 자신들이 원하는 소원을 빌고 그것을 들어 줄 수 있는 존재로 믿는다. 그러므로 신을 향한 제례와 기도 행위는 빼놓을 수 없다.

 

오늘날 종교의 위기는 교단의 타락으로 인한 이유도 있지만 우주 만물과 인간사에 일일이 개입한다는 세계관이 현재의 과학적 사고와는 잘 접합되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청년 세대들에겐 더욱 그렇다. 서울 강남 지역의 꽤 큰 교회의 평균 연령이 70세 안팎이라고 한다. 청년들이 교회에 나오지 않는다는 얘기다. 오늘날 동서양의 과학자들은 진화론을 믿고 있는 가운데 그들도 인격적 신은 부정해도 절대자의 존재 가능성을 부인하지는 않는 것 같다.

 

왜냐하면 과학자들이 모르는 것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빅뱅은 알아도 블랙홀과 암흑물질에 대해 선거의 백지상태다. 지구에 일어나는 일들은 대부분 의문투성이다. 설날 무렵에 터진 중국발 코로나바이러스 사태에서 보듯이 인간의 과학은 아직 바이러스엔 무기력하다. 따라서 과학 시대에서도 절대자의 존재는 상당 기간 어쩌면 인류가 존속하는 한 영원히 필요할지도 모른다. 21세기 과학 세대들의 절대자의 속성에 가장 근접한 가설적 세계관은 ‘퇴계의 리 세계관’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절대자 로서의 리의 존재를 믿되 그에 대한 기복 행위는 배제하고 오직 경(敬)의 철학을 실천하는 신념 생활 체계’가 새로운 AI세대에게 가장 설득력 있는 인생 철학이자 절대자론이 될 수 있지 않을까.

 

안유경 박사는 “경을 너무 엄숙하고 추상적으로 생각하지 말아야 한다고 말했다. 경이란 정제엄숙하는 가운데 마음이 나쁜 방향을 흘러가는 걸 잡는 것”이라고 말한다. 기성 종교의 기복 행위는 그 필요성은 인정되지만 아무래도 신자들의 ‘이기적’ 동기에 의해 종교 본래의 가르침에 벗어하는 과도한 ‘기복’ 경향을 띠기 쉽다. 교단의 유지와 결속을 위 해서, 신자들의 바람을 들어줘야 현실적 필요함이 복합적으 로 요구되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기적’ 기복행위가 종교 타락을 가져오고 결국 새로운 신자를 확보하는 데에서는 오늘날 같은 합리적 이성적 시대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에 비해 퇴계의 경 철학 사상은 털끝만치도 자신의 욕심을 절대자에게 바라는 것이 없이 스스로 착한 선을 실천하고 널리 이타적 행위를 강조한다. 퇴계의 리사상은 홍익인간 사상과도 맥이 닿는다. 역사 연구가인 장우석 선생은 퇴계는 존경해마지 않는 정암 조광조의 죽음과 이언적의 귀양, 넷째 형인 온계공 이해의 억울한 죽음 등을 겪으면서 당대의 유학자들과는 다른 깊이를 얻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안유경 박사는 “율곡과 기대승은 비교적 일찍 죽은 데 비해 퇴계는 천명을 안다고 하는 70세까지 살았던 것도 원인이 아닐까 생각된다”고 말했다. 장우석 선생은 “퇴계는 절대자적 존재인 리에 대한 존중과 순종하는 마음을 강조한 것으로 이해된다며 아마도 고대부 터 내려온 한민족의 천신사상이 그의 리사상에 반영된 것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말했다. 현대인들은 종교 집단의 타락을 혐오하고 교리의 구속을 싫어하고 종교가 주는 구원의 약속을 비과학적이라는 이유로 종교를 떠나고 있다.

 

그것이 대세로 굳어지는데 또 한쪽에서는 극단적인 종교 집단들이 폭력적 교리 이념을 퍼뜨리며 ‘분쟁’과 ‘고립’을 생존수단으로 삼고 있다. 그들의 도그마를 깨 우치기 위한 수단으로 또 다른 종교적 교리나 도그마, 또는 현대 철학과 과학, 사상과 이념은 힘이 부쳐 보인다. 이런 정신적 교착 상황에서 퇴계의 절대자적 리사상은 종교 간 차이 를 해소하는 새로운 절대자론으로 제시해 볼 수 있을 않을까.

 

종교를 저버린 현대인들은 현세의 고통과 시련을 위로받을 곳을 상실하고 영혼불멸의 천국 꿈을 잃어버린 자신을 발견하고 있다. 인간 문명의 과오로 폐허화되고 있는 지구에서 새로운 행성을 찾아 천체 망원경을 들여다보는 지구인들에게 퇴계의 리 사상은 어쩌면 구원적 사상이 될지도 모른다.

 

MeCONOMY magazine February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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