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가요는 사랑의 슬픔과 환희를 노래하거나 인생의 나날에서 겪는 시련들과 위로를 표현한다. 간혹 사랑과 인생의 절망 속에서 희망을 노래하기도 한다. 그래도 대중음악의 압도적 다수는 대중의 감정 코드에 영합한다. 대중가요는 반짝 유행하는 것도 있고 극히 드물게 세대를 넘어 명곡으로 즐겨 부르는 노래들도 있다. 대중가요만큼 그 시대 사람들의 감정과 정서를 전하는 예술은 없다. 너무나 밀착되어 있기에 대중음악인들은 그 어떤 장르의 예술인들보다 사람들의 희로애락에 웃고 운다.
80년대와 90년대 발라드 작사가로 이름을 날렸던 지예가 20년간의 공백을 깨고 활동을 재개했다. 가수이기도 한 지예는 자신이 작사한 곡들 중에서 8곡을 골라 직접 노래를 부른 CD를 내놓았다. 발라드는 이지리스닝과 포크, 록의 영향을 받아 형성된 것으로 보인다. 우리 발라드의 중심적인 작사가가 지예다. 그녀는 변진섭, 강수지, 윤상, 소방차, 임병수 등의 히트곡을 작사했다. 가수로서도 정규앨범 5장을 냈고 이번에 프로젝트 음반 1장을 추가했다. 가요계에 다시 돌아온 지예를 만났다. 검은 드레스를 걸친 그녀는 전혀 나이를 가늠할 수 없을 만큼 젊어 보였고 활기찬 목소리였다.
Q. 1980년대와 1990년대에 한창 작사를 할 때 400여곡을 작사 했다고 들었습니다. 시집도 낸 적이 있는데, 시를 짓는 것과 노랫말을 쓰는 것과는 많이 다릅니까?
A. 작시와 작사는 차이가 있습니다. 시란 딱 보고선 바로 느껴지는 글이라고 할 수 있지요, 반면에 노랫말은 멜로디에 얹어서 귀로 들으면서 스토리텔링을 느끼는 거라고 봅니다. 눈으로 보는 것과 귀로 듣는 것만으로도 차이가 나요. 시는 간결하면서도 의미 있는 몇 개의 단어들을 조합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시는 문법에 어긋나더라도 느껴지면 되는 글이니까요. 이에 비해 작사는 하나의 짧은 소설을 압축해놓은 거라고 보면 될 것 같습니다.
Q. 그렇군요. 스토리를 압축한 게 가사라니, 어떤 면에선 작사가 작시보다 더 어려울 수 있겠네요.
A. 작사도 두 가지 경우가 있습니다. 먼저 작사를 하고 난 뒤에 멜로디를 쓰는 경우와 멜로디가 먼저 나와 있고 거기에 작사를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후자의 작사가 더 어렵습니다. 저의 작품은 대부분 멜로디가 있는 상태에서 작사를 했습니다.
Q. 처음에 어떻게 작사를 하게 됐어요?
A. 어렸을 때부터 시를 너무 좋아해서 전 세계의 명시는 다 구해서 읽었다고 할까요. 그러다가 1984년 KBS신인가요제에 나갔어요. 그 대회에서 저에게 미리 정해진 창작곡이 주어졌어요. 근데 그 가사가 너무 마음에 안 드는 겁니다. 그냥 제가 새로 가사를 써버렸어요. 제 것이 너무 좋은 거예요. 그 이후로 노트와 팬을 들고 다니며 미친 듯이 가사를 썼어요. 가사가 막 쏟아진다고 할까요, 저 자신이 이상하게 느낄 정도로 마치 신들린 듯이 작사를 했습니다. 그 무렵이 23살 정도 됐던 것 같아요.
Q. 자신의 작사 스타일이라고 한다면?
A. 저의 스타일은 사랑을 표현해도 ‘무겁다’고 할까요. 전체적으로 저의 가사는 무겁습니다. 김종찬 씨가 부른 ‘산다는 것’을 어느 분이 듣고선 스님이 쓴 글이 아니냐고 말하는 분들이 있었어요.(웃음) 제가 20대에 쓴 가사입니다. 이번에 제가 낸 앨범에서 이 곡을 불렀습니다.
가사를 소개하면,
『어디로 가야 하나 멀기만 한 세월
단 하루를 살아도 마음 편하고 싶어
그래도 난 분명하지 않은 갈 길에 몸을 기댔어
날마다 난 태어나는 거였고
난 날마다 죽는 거와 같았지
내 어깨 위로 짊어진 삶이 너무 무거워
지쳤다는 말조차 하기 힘들 때
다시 나의 창을 두드리는 그대가 있고
어둠을 거둘 빛과 같아서
여기저기 끝이 아님을 우린 기쁨처럼 알게 되고
산다는 건 그것만으로도 의미는 충분한 거지.』
Q. 가사의 의미가 깊은 듯합니다. 이와 같이 인생을 음미하는 가사는 드물 것 같군요.
A. 90년대 초에 ‘엄마 말해줘요’란 곡을 발표했어요. 이 노래가 나오고 집 나온 청소년들이 집으로 많이 돌아갔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이 가사는 길지 않습니다.
『엄마 말해줘요 난 어디로 가는 가요
불어오는 바람조차 느낄 수 없어요
엄마 왜인가요 왜 이렇게 힘든가요
가도 가도 끝이 없어 울 수도 없어요
너무 많은 걸 바라고 또 원한적 없는데
마음 붙일 곳 찾아 헤매는 내 모습 전부인걸
오늘 하루만이라도 나를 모르게 해줘요
두 눈이 예쁘던 그 애를 기억하나요
그앨 본적있나요 그앨 본적있나요.』
여기서 엄마는 ‘하느님’을 생각하고 썼는데, 이 노래를 듣고 많은 사람들이 위로를 받고 마음을 잡았나봐요.
Q. 무슨 이유로 가요계를 떠났나요?
A. 90년대 초 서태지 씨의 댄스 음악이 마치 허리케인처럼 가요계를 휩쓸면서 저의 음악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었어요. 가요계를 떠나서 독서를 하고 여행을 떠나기도 하며 지금까지 왔습니다.
Q. 이제 컴백하셨는데요, 앞으로 활동 계획은?
A. 제 곡을 가지고 오랜만에 녹음을 했으니까. 당분간은 이번에 출시된 CD를 많이 알릴 겁니다. 동시에 해외로도 진출하려고 합니다. 한국에 아이돌 음악만 있는 게 아니라 저처럼 팝아트적인 발라드 곡들도 있다는 걸 해외에 알리고 싶습니다.
구자형 음악평론가는 지금은 힙합과 댄스음악이 풍미하고 있지만 사람들이 다시 발라드를 찾을 시기가 올 것이라고 말했다. “발라드와 같은 부드러움, 순수함의 노래는 우리에게 늘 필요합니다. 발라드 같이 순수한 사랑 없이 우린 살 수 없잖아요. 지예의 가사를 보면 늘 사랑에서 시작해서 인생으로 끝나는 것 같아요, 인생 발라드라고 할까요.” 그는 말했다. 지예는 스스로 몽환적인 음악을 하고 싶다고 했듯이 그녀의 음악은 음유시인과 같은 스타일의 노래라고 구자형 씨는 말했다. <Bette Davis Eyes>를 부른 킴 칸스의 음색과 유사한 지예의 음악은 어쩌면 국내보다는 영국 등 서구에서 더 알아줄지 모르겠다고 구 작가는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