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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한국의 역사와 천혜의 자연을 가진 中 영성시 방문기

 

<M이코노미 김선재 기자> 중국 대륙 최동단에 위치해 중국 속의 한국이라 불릴 정도로 한국과 거리상으로 가까운 산둥성(山東省)’. 그 중에서도 우리나라와 비슷하게 3면이 바다로 둘러싸였고,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이 바로 영성시(榮成市)’. 행정구역상 우리나라 ()’에 해당하는 영성시는 중국 대륙에서 한국과 가장 가까운 곳으로, 가까운 거리만큼이나 한국과 오랜 인연을 갖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뿐만 아니라 풍부한 해양자원을 자랑하는 영성시에서 볼 수 있는 독특한 형태의 중국 전통가옥은 이곳을 찾는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아직은 한국에 많이 알려지지 않은 중국 영성시의 대표적 볼거리를 소개한다.


960에 이르는 대륙과 138,000만명에 달하는 인구를 무기로 무섭게 성장하고 있는 중국. 광활한 중국 대륙의 가장 오른쪽 끝 뾰족하게 튀어나온 부분에 자리하고 있는 산둥성중국 속의 한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한국과 가깝다. 그 중에서도 특히나 가까운 곳이 바로 영성시.

 

산둥성 위해시(威海市)현급(縣級)’ 행정구역으로 1,392의 면적과 2007년 기준 66만명의 인구가 살고 있는 영성시는 인천과 불과 417km 떨어져 있을 정도로 가깝다. 비행기로 1시간 정도면 갈 수 있는 거리다. ‘현급은 행정단위상 우리나라의 ()’에 해당한다.


가까운 거리만큼 영성시는 한국과 인연이 깊은 도시다. 영성시에 있는 석도항(당시 적산포)은 통일신라시대 바다를 주름 잡으며 당()과 신라, 일본 사이의 무역을 중계하고, 교역을 위해 바다를 건너는 선단을 대상으로 노략질을 일삼던 해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해상왕장보고 장군이 지금의 전라북도 완도에 해당하는 청해(淸海)에 설치한 진()청해진(淸海鎭)’과 함께 중국에서 무역의 거점으로 삼았던 곳이었다. 당시 장보고는 이곳에 살고 있는 신라인들을 규합하고 이들을 하나의 공동체로 만들기 위해 적산 법화원(赤山 法華院)’이라는 사찰(寺刹)을 세웠는데, 현재 이곳은 중국인들이 장보고 장군을 기억하고 기념할 수 있는 장보고 동상과 그의 생애, 업적을 자세히 소개하는 전 시관이 마련돼 있다.




영성시는 3면이 바다로 둘러싸여 있는 만큼 산둥성에서 소비되는 해산물의 70%를 생산할 정도로 풍부한 해양자원을 자랑한다. 때문에 영성시에는 이곳에 살던 과거 중국인들만의 독특한 주거형태가 전해지고 있다. 바로 해초방(海草房)’이다. 중국 전통민가의 하나로, 세계적인 유형·무형문화유산인 해초방은 짚과 해초를 적절히 섞어 만든 지붕이 특징이다.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할 뿐만 아니라, 해초가 머금고 있는 염분 때문에 방풍(防風), 방습(防濕), 방충(防蟲), 방화(防火) 등의 기능을 갖고 있다고 한다.

 

통일신라시대 국제적 인물 장보고 장군

 

통일신라시대 때 지금의 전라북도 완도에 설치한 청해진을 중심으로 중국과 일본과의 무역을 중계하고, 바다에서 노략질을 일삼는 해적으로부터 상인들의 선단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던 장보고 장군을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이 이상으로 알고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그도 그럴 것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삼국 유사(三國遺事)’에 그에 대한 기록이 있기는 하지만, 아주 간략한 수준에 머무르고 있기 때문이다. ‘삼국사기에서 전하고 있는 장보고에 대한 기록은 장보고의 무예가 출중했고, 당나라에 가서 무녕군(武寧軍, 외국인 용병부대) 소장(少將, 중간 관리자)’을 지냈으며, 신라로 돌아와서는 왕에게 청해를 지키도록 건의해 군사 1만을 받았다는 내용 정도다.


 

오히려 일본의 역사서 일본후기(日本後紀)’ ‘속일본기(續日本紀)’ ‘속 일본후기(續日本後紀)’, 중국의 역사서 신당서(新唐書)’ 등에서 더 자세히 전하고 있다. 당나라 최고의 시인으로 평가받는 두목(杜牧)번천문집(樊川文集)’에 장보고편을 따로 만들어 그의 일대기를 자세하게 다뤘다.

 

그는 장보고를 안녹산(安祿山)의 난때 활약했던 곽분양(郭汾陽)’에 비유하면서 명철한 두뇌를 가진 사람으로 동방에서 가장 성공한 사람이라고 칭찬했다. ‘안녹산의 난은 당 현종 시절인 755년 절도사였던 안녹산이 조정에 반기를 들어 일으킨 반란이고, 곽분양은 당시의 명장으로, 무예가 출중했지만 중앙에 중용되지 못하다가 안녹산의 난을 계기로 삭방(朔方, 북쪽 지역) 절도사가 돼 난을 격퇴, 당 왕조를 다시 일으켰다는 평가를 받는 공신이다. 그런가하면 일본 불교 천태종의 중흥조인 엔닌(圓仁)은 여행기 입당구법순례행기(入唐求法巡禮行記)’에 서 당나라를 여행할 때 장보고의 도움으로 귀국할 수 있었던 인연을 소개하며 평소에 받들어 모시지 못했으나, 오랫동안 고결한 풍모를 들었다. 엎드려 우러러 흠모함이 더해간다(生年未祇奉 久承高風 伏增欽仰)”라는 편지를 남겨 그에 대한 존경을 드러내기도 했다. , 당시 장보고는 국내에만 머무르지 않고 당나라와 일본 등을 무대로 활동했던 국제적인 인물이었다는 말이다.

    

 

중국에서 활약했던 장보고에 대한 흔적은 석도항 인근에 있는 법화원이라는 사찰에서 찾을 수 있다. 법화원은 장보고가 당의 무령군 소장으로 있을 때 세운 사찰로, 당시 신라원(新羅院, 신라사람이 당에 세운 사찰의 통칭) 중 가장 유명한 곳이었다고 한다.

 

법화원에 들어가 장보고 유적지에 들어서면 거대한 벽화를 볼 수 있다. ‘장보고 유적지는 중국 정부가 최초로 공식 승인한 외국인 기념관이라는 점에서 장보고의 중국 내 위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벽화는 장보고를 중심으로 주변에 그의 업적을 돌에 일일이 새긴 것이다. 바다를 배경으로 한 듯 벽화의 테두리에는 물결을 형상화한 무늬가 있고, 정중앙에는 위엄있는 모습의 장보고가 왼손에 칼을 들고 앉아 있고, 그 주변에는 장군으로서의 장보고, 무역상으로서의 장보고 업적을 정교하게 조각해 놓았다.

 

벽화의 양 옆에는 명신복우 사해 대사체교삼방(明神福佑四海 大使締交三邦)’이라는 글이 쓰여 있다. ‘명신(적산포를 수호하는 신)은 사해(온 세상)에 복이 미치게 돕고, 대사(장보고)는 삼방(한국, 중국, 일본)과 교역을 했다는 의미다. 벽화 앞에는 해상왕 장보고 기념 사업회(海上王 張保皐 記念事業會)’에서 증정한 향로가 놓여있다.

 

벽화를 지나 장보고 전기관(傳記館)’ 입구를 지나면 8m 높이의 거대한 장보고 동상이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다. 갑옷을 두르고 늠름하고 다부진 표정으로 왼손에 칼을 든 채 가슴을 활짝 펴고 서 있는 모습을 한 동상에서 풍기는 당당함과 기백은 당시 장보고의 카리스마와 한··일 무역을 통제하고 중계했던 그의 힘을 보여주는 듯한 느낌마저 들게 한다.

 

장보고 전기관은 총 13,000면적에 총 5개관으로 구성돼 있다. 각각의 전시관에는 장보고의 입당기와 당나라 장군으로서의 업적, 법화원 건립, 해적 소탕, 청해진 설치, 암살 등 그의 일대기를 그림과 조형물, 역사서 등 유물을 통해 자세히 전하고 있다. 전시관을 모두 관람한 후 밖으로 나오면 장보고 기념탑(張保皐 紀念塔)’이 눈에 들어온다. 1994년 세계한민족연합회 회장이 사재를 털어 세웠다는 이 기념탑의 하단 중앙에는 20151122일 서거한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휘호가 새겨져 있다. 탑은 한·중 양국의 영원한 친선을 의미한다고 한다. 이밖에 장보고 공적비(功績碑)’ 등도 법화원에서 찾아 볼 수 있는 장보고의 흔적이다.

    

 

법화원 대표적 볼거리명신상·관음보살 분수쇼

 

앞서 설명한 바와 같이 법화원은 장보고가 당나라 무녕군 소장으로 있을 때 적산지방에 세운 사찰이다. 당시 적산지방에는 당에 사는 신라인 집단거주지인 신라방(新羅坊)의 하나인 적산촌(赤山村)’이 있었는데, 장보고는 그곳을 경제적 기반으로 삼았다고 한다.

 

먼저 법화원이라는 이름은 이 사찰의 승려가 천태종에 속해 법화경(法華經)을 읽었기 때문에 붙여졌다고 한다. 법화원은 당에 머물던 신라인의 신앙의지처이자 항해의 안전을 기원하는 예배처, 동시에 해외 포교원, 본국 신라와의 연락기관 구실도 했다. 신라에서 당으로 간 승려는 물론, 일본의 승려들도 이 절에 머물면서 많은 혜택을 봤다. 엔닌의 입당구 법순례행기에 신라의 불교의식이 자세히 기록돼 있는 이유도 이 같은 배경 때문으로 보인다.

 

그 기록에 따르면 당의 승려로서 신라의 승려를 시봉(侍奉, 보모나 법 높은 스승을 모셔 받듦)해 스승으로 섬기는 자도 있었다고 한다. 한 때는 이 곳에 엔닌이 머물다 일본으로 돌아가 쓴 기록 때문에 법화원이 일본의 절로 잘못 알려지기도 했지만, ·중 수교 이후 이를 바로 잡았다. 지금의 법화원은 당나라 시기에 헐렸던 것을 한·중 수교 이후 과거의 기록에 따라 19905월 다시 세운 것이다.


 

법화원에 가는 길부터 눈을 사로잡는 것은 아시아의 신불 동상 중 가장 큰 규모로 높이만 58.8m에 이르는 거대한 크기의 적산명신(赤山明神)’의 동상이다. 동상의 앞면은 승려의 모 습, 뒷면은 장보고의 모습을 본 따서 만들었다고 한다. ‘적산명신북방의 보호신으로, ‘후한서(後漢書, 광무제부터 헌제의 13196년의 역사를 기록한 역사서)’에서 소개하고 있는 해신이다. 평안과 재물, 장수를 관장한다고 한다. 오른팔은 파도를 다스린다고 전해지는데, 실제로 동상은 바다를 향하고 있고, 오른손은 뭔가를 누르고 있는 듯 손바닥이 밑을 향하고 있다. 그래서 인지 석도의 바다는 평온하고 잔잔했다.

 

적산명신의 거대함도 놀랍지만, 법화원의 대표적인 볼거리는 바로 관음보살 분수쇼. 하루에 2~3회 정도로 횟수가 제한돼 있는 분수쇼는 법화원 관음전 앞에 청동으로 만들어 진 25.8m 높이의 관음보살상을 중심으로 사천왕과 18나한 동자상, 용 등이 배치된 조형물에서 이뤄진다. 분수쇼가 시작되기 전부터 관음보살상을 둘러싸고 있는 나한과 동녀, 용에 서 느껴지는 생동감과 조형물의 정교함에 감탄이 절로 난다.

 

분수쇼의 시작을 알리는 음악이 울려 퍼지면 조형물 하단에 설치된 기계가 물안개를 만들어 내 마치 구름 위에 있는 듯한 분위기를 조성한다. 불교 음악에 맞춰 진행되는 분수쇼는 360도 회전하는 관음보살상과 불을 뿜은 사천왕, 최고 31m 까지 물을 쏘아 올리는 분수까지 더해지면서 절정에 이른다. 15분간 분수쇼가 진행되는 동안 쏘아 올린 물 때문에 만들어진 물안개는 관음보살상의 웅장함, 적산의 풍경과 더해져 마치 극락세계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중국 전통가옥 해초방

 

산둥성은 인류 문화발상지 중 하나로 신석기 시대 대표적인 문화유적지인 대문구 문화와 용산문화가 다수 분포돼 있다고 한다. 고대 동이족들의 활동 무대였다고 하는데, 인류 역사가 오래된 만큼 중국의 전통가옥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영성시에는 그 중에서도 바다와 인접해 있는 환경을 잘 이용했던 전통가옥이 지금까지도 이어져 오고 있는데, 화강암으로 벽을 쌓고 해초를 엮어 지붕에 올린 해초방이 그것이다.


 

해초방초가집 해초버전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가 갈 것이다. 산둥의 바다에서 잘 자라는 해초를 재료로 이를 두껍게 엮어 지붕에 올린 것으로, 낮은 담벼락과 대비되는 높은 지붕이 특징이다. 다른 건물들의 지붕이 45도 정도 된다고 하면 해초방의 지붕은 70도 정도 된다. 이처럼 높은 지붕 때문에 멀리서 보면 배의 모양으로 보인다고 한다.

 

해초방이 다수 분포해 있는 동저도촌(東楮島村)’에 도착하자 전체적으로 회색빛의 마을이 눈에 들어왔다. 해초로 지붕을 만들었기 때문에 짙은 녹색이나 검은 색일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마을은 회색빛이었다. 그리고 상당히 조용했다. 조용한 회색빛의 마을은 바다로 둘러싸인 주변과 녹아들면서 자연 그 자체가 됐다.


 

실제로 해초방은 상당히 자연친화적인 집이다. 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 내부는 전통에서 벗어나 현대화가 이뤄진 모습이었지만, 벽은 자연에서 나온 그대로의 화강암을 그대로 사용했고, 지붕도 밀물에 의해 육지로 올라왔다가 썰물 때 바다로 돌아가지 못한 해초를 주워서 말린 것을 사용한 과거의 것 그대로를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해초 지붕을 올리기 전에 밑에 까는 짚도 자연의 재료다.

 

해초방의 또 다른 특징은 겨울에는 따뜻하고 여름에는 시원한 주거환경과 방풍, 방화, 방충 등의 기능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해초방은 지역에서 쉽기 구할 수 있는 화강암으로 집의 외벽을 쌓았는데, 채취한 돌을 일정한 모양으로 가공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의 모양으로 쌓여 올린 데서 오는 불규칙함은 왠지 바다와 어울리는 거친 느낌을 한껏 담고 있다. 뿐만 아니라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진 벽은 습기와 염분을 담고 있는 바람과 비 때문에 집이 부식되는 것을 막는 역할도 한다. 이와 함께 태양에 바싹 말린 해초를 사용한 지붕은 해풍과 폭우로부터 집을 보호하는 기능을 하고, 두껍게 올린 해초는 햇빛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 여름과 겨울 각각 쾌적하고 살기 좋은 환경을 제공한다.

 

이처럼 자연친화적인 재료와 방법을 통해 지어졌고, 제공하는 주거환경도 상당히 우수하지만, 현재 중국에서 해초방을 볼 수 있는 곳은 많지 않다고 한다. 급속한 현대화로 인해 이곳에 살고 있던 사람들이 많이 도시로 이사를 갔고, 집 자체도 굉장히 좁기 때문에 현대생활과는 다소 맞지 않는 부분이 있다. ‘해초방에 거주하고 있는 현지인의 집 안으로 들어가 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는데, 성인 남자 3~4명 정도가 마당에 들어서자 마당이 꽉 차는 느낌이었다.

 

이와 함께 주변 바다에서 양식업이 활발하게 이뤄지면서 발생한 바다의 오염으로 집을 새로 짓거나 기존의 집을 보수·수리하는데 쓸 수 있는 해초가 예전만큼 번식하지 못해 그 양이 줄어든 탓도 있다. ‘동저도촌을 방문했을 때 마을 주민들이 한 집의 지붕을 한창 보수 중이었다. 한 주민은 요즘에는 해초가 많이 부족해서 지붕에 지푸라기를 섞어서 사용한다고 말했다.


MeCONOMY magazine March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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