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倭)의 모든 자원과 백성을 다 동원해서라도 백제 본국과 의자대왕을 구하라."
역사소설 <제명공주>는 백제를 살리기 위해 나라의 온 운명을 걸었던 제명천황에 대한 이야기이다. 영화감독의 사소한 궁금증에서 시작된 백제의 사실적인 역사스토리는 삼국사기에는 없는데 일본서기에는 기록되어 있는 백제의 기록들을 따라가면서 시작된다. 저자 이상훈 씨는 우리뿌리 속 백제는 정말 중요한 역할을 했음에도 왜곡되어 있다고 지적한다. "제명천황은 일본인들이 아주 싫어하는 왕입니다. 백제를 너무 사랑했기 때문이죠. 제명천황은 백제가 위험에 처하자 일본국민의 절반을 동원해 백제를 구하러 옵니다. 우리역사와 일본역사에도 기록되어 있는 백촌강 전투에요. 또 당시 일본교토와 오사카에 있는 귀족들은 아주 반대를 했는데도 백제와 가까운 곳으로 수도를 옮깁니다."
다음은 저자 이상훈 씨와 인터뷰 내용이다.
제명공주와 일본 어떤 인연이 있죠?
그걸 설명하려면 백제의 가계도를 먼저 살펴봐야 합니다. 일본서기에 나와 있는 내용을 잠시 소개하자면, 백제 27대 위덕왕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큰 아들이 아좌태자, 작은아들이 임성태자입니다.(일본역사에는 쇼토쿠 태자, 성덕태자로 소개) 두 사람의 초상화도 있어요. 당시 백제는 대왕이 될 큰 아들을 담로에 보내는 관례가 있었는데 큰 아들인 아좌태자가 일본으로 가서 갑자기 죽게 됩니다. 이후 백제 위덕왕이 죽게 되면서 왕실에 쿠데타가 일어나니까 작은 아들인 임성태자가 일본으로 쫓겨 갑니다. 이후 백제귀족의 세력에 의해 힘을 기른 임성태자는 왕이 돼서 본국인 백제대왕으로 돌아오게 되는데 이분이 바로 백제 제30대 왕인 무왕(武王)입니다. 의자왕의 아버지죠. 제명은 무왕의 둘째 아들에게서 낳은 공주에요. 다시 말해서 의자와 제명은 사촌 간이죠. 두 사람은 일본에서 태어나 같이 자랐어요. 정사기록은 없지만 일본야사에 의자와 제명이 결혼했다는 기록도 있습니다.
실제 결혼을 한 건 아니라는 거네요?
당시는 왕실보존을 위해 사촌 간 결혼을 했는데 이 두 사람은 결혼을 하지는 못합니다. 무왕인 임성태자가 의자를 강제로 백제대왕으로 보냈으니까요. 이때 의자의 나이 16~17세 정도 됐죠. 일본을 떠나기 전 두 사람은 마지막 사랑을 나누죠. 의자는 백제에 가서 제명을 부르겠다고 하고 떠납니다. 임성태자도 그러겠다고 약속하고요. 그러나 당시 백제는 강한 호족의 힘을 모아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래서 의자는 호족의 딸과 강제결혼을 하게 되죠. 제명은 의자의 아이를 가진 상태였는데 그걸 안 임성태자가 자신의 셋째 아들인 조메이에게 시집보냅니다. 일본서기에는 제명공주가 우리말로 서명한 기록이 나옵니다. 조메이는 나중에 ‘왜’ 왕이 되는 인물입니다.
일본역사에는 어떻게 기록되어 있나요?
일본서기에 보면 제명천황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는데 각자 아버지가 다르다고 기록되어 있어요. 두 아들의 이름은 ‘중대형’과 ‘대해인’인데 일본이름은 ‘나카노오해’와 ‘오오야마’입니다. 중대형은 나중에 천지천왕이 되고, 대해인은 천무천왕이 됩니다. 큰 아들인 천지천왕은 제명천황이 죽고 난 후에도 백제를 위해 수도까지 옮기면서 끝까지 백제를 구하려고 안간힘을 씁니다. 하지만 천무천왕은 백촌강 전투에서 형인 천지천왕이 참패를 하고 죽자 형의 아들과 조카까지 죽이면서 왕위에 오르게 됩니다.
일본인들은 천무천왕을 아주 존경합니다. 일본을 만든 왕이니까요. 그 당시 일본은 이름자체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천무천왕이 백제와 단절하면서 지금부터 백제는 잊는다고 공언합니다. 같은 형제인데 왜 그렇게 달랐을까요. 저는 아버지가 달랐기 때문이라고 봐요. 중대형은 의자대왕과 제명천황의 아들이라서 일본이 숨기는 것이죠. 일본귀족들의 힘을 빌려서 백제를 구했어야 했지만 천무천왕은 오히려 백제와 단절을 시도하죠. 백제를 살리려고 했던 제명천왕과 천지천왕은 일본역사에서 아주 나쁜 왕으로 왜곡시킵니다. 두 왕을 부각시키면 일본이 백제의 속국이었다는 게 드러나니까요. 천무천왕도 자기조상이 백제왕족이란 걸 알았지만 백제는 망했다며 백제를 일본화 합니다. 일본역사에서는 아주 중요한 부분입니다.
제명공주가 두 번이나 천황에 오를 수 있었던 이유가 있나요?
제명이 삼촌과 결혼했다고 했잖아요. 그분이 조메이 왕입니다. 그에겐 아들이 하나 있었는데 일찍 죽었어요. 조메이 왕이 죽자 차기왕권을 두고 다툼이 생기면서 세력싸움으로 번지게 됩니다. 그걸 잠재우기 위해 제명공주가 임시왕위에 오르게 되죠. 당시 일본 최고실권자는 소가노 이루카라는 사무라이였는데 안하무인이라 골치 아픈 존재였던 것 같아요. 그는 군사권을 가지고 있었기에 힘이 막강했다고 해요. 다만 백제대왕의 칙령을 받는다는 조건으로 천황 앞에서 만큼은 무기를 다 풀어야 했다고 해요. 이 사무라이가 제명천왕 앞에서 중대형(제명의 큰 아들)에 의해 죽이게 됩니다.
아주 역사적 사건이죠. 이를 계기로 제명천황은 자리에서 물러나고 제명천황의 오빠가 왕위에 오르지만 권력과 손을 잡게 되면 제거됩니다. 그러자 백제왕실로부터 “왜 왕실에서 피비린내 나는 사건이 일어나느냐‘며 다시 제명이 왕위에 오르라는 칙령이 내려옵니다.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 백제 의자대왕이 시켰다고 할 수밖에 없는 미심적인 부분들이 아주 많습니다. 저는 의자대왕이 제명천황을 두 번씩이나 왕위에 오르게 했다고 봅니다.
백제 의자대왕에 대한 기록도 있나요?
일본서기에서는 의자를 ‘해동공자’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주 똑똑한 분으로 삼국을 통일할 수 있는 사람으로 기록하고 있죠. 의자대왕은 신라를 정복한 후 삼국통일을 이루겠다는 큰 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만, 외교에 실패하고 맙니다. 당시 고구려가 있었기에 당나라가 밀고 내려올 거란 생각을 미처 못 했던 것이죠. 고구려와 백제는 당시 당나라와 대등한 관계를 가질 정도로 큰 나라였습니다. 그러나 망하면서 중국의 속국이 됐죠.
삼국사기에는 의자대왕이 항복했다고 기록되어 있는데 중국사기에는 그렇지 않습니다. 절대 항복하지 않았어요. 백제는 역사적으로 아주 큰 나라였습니다. 신라가 백제에 조공을 바쳤다고 하잖아요. 백제기록이 남아 있지 않은 건 일본이 모두 가져가서 일본서기를 만든 다음에 불태워 버렸기 때문이죠. 일본서기에는 천무천왕이 백제의 역사를 불태웠다는 기록이 아주 상세하게 나와 있습니다.
백제역사가 왜곡되었다고 보는 거네요?
그렇죠. 일본서기를 보면 백제역사에 대한 기록이 교묘하게 일본역사로 바뀝니다. ‘왜’가 백제의 담로국이라는 게 명백한데도 백제가 ‘왜’의 제후국이다 이렇게 바뀝니다. 너무 이상하잖아요. 우리 역사학자들이 반박하지 못하는 건 기록이 없으니까요. 일본서기에 보면 천무천왕이 백제와 단절한다고 말 한 게 나오는데 앞뒤 맞지 않아요. 백제가 자기들의 제후국이면 왜 단절합니까. 안 맞죠. 일본학자들이 이 부분을 많이 지적합니다. 일본이 백제이야기를 그토록 많이 한 것은 자기들의 조상이기 때문이에요. 한국과 일본은 같은 민족이고 천왕은 백제의 왕족이라는 걸 다 알아요.
현재 일본 아키히토(明仁)천황이 말했잖아요. “옛 칸무(桓武·재위 781∼806)천황의 생모가 백제 무령왕의 자손이라고 ‘속일본기(續日本紀)’에 기록되어 있어 한국과의 인연을 느낀다고.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죠. 왜곡이 당연해요.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를 토대로 만들어진 백제역사는 왜곡될 수밖에 없다고 봐요. 신라제도의 해설에 치중한 삼국사기는 백제가 멸망한 후 약 600여 년이 지난 다음에 기록된 책입니다. 백제역사를 제대로 알려면 일본서기를 찾아봐야 해요. 거기에는 아주 상세한 기록이 있습니다.
역사소설을 쓰게 된 계기가 있었나요?
우리가 역사를 아는 게 학교에서 배운 게 다잖아요. 학교에서 배운 역사와 실제역사는 다른 부분이 아주 많아요. 왜 이렇게 다를까. 역사를 공부하게 되면서 그런 궁금증이 생겼죠. 특히 삼국사기에 왜곡되어 있는 백제의 역사를 찾아보고 싶었어요. 일본은 우리 백제가 뿌리거든요. 우리가 일본과 왜 그렇게 싸워야 했는지를 역사를 재해석하면 충분히 풀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죠. 그래서 책을 쓰게 됐어요. 역사는 후세에 의해 승자의 입장에 쓰여 졌기 때문에 망한 나라의 역사는 폄하시킬 수밖에 없어요. 우리가 역사를 자세히 알려면 그 뒷이야기를 살펴봐야죠. 무덤에서 나온 기록들은 거짓말을 못하니까요. 왜 백제 왕족이 신사에 신으로 모셔져 있을까, 이런 부분들도 살펴보면서 접근해 가다보니 역사에 푹 빠지게 된 것이죠.
기존 역사소설과 다른 점은 어떤 건가요?
지난 10년 동안 자료를 찾기 위해 일본을 수십 차례에 걸쳐 방문했어요. 역사를 나름대로 재조명하면서 제명천황 묘소참배도 했고요. 수많은 일본논문을 살폈고, 우리나라 논문 중에 일본에 관련된 논문들을 모두 참고했죠. 일본서기라든가 신창성시록(성씨를 기록한 문서) 등 여러 자료들도 뒤졌고요. 백제의 제명공주가 천황이 된 사실을 가지고 기록이 없는 부분은 상상으로 채우다 보니 어려운 점도 많았죠. 꼭 찾고 싶었던 의자대왕과 제명천황의 러브스토리는 못 찾았지만 충분한 가능성을 가지고 상상력으로 채우다 보니 재미있었죠. 어쨌든 사실을 기초로 했다는 것, 그리고 많은 자료를 들쳐서 사실에 충실했다는 점은 기존소설과 차별성이 있다고 봐요.
다른 계획도 있는지요?
지난 10년 간 역사 3부작을 꼼꼼히 준비해왔어요. 이미 출간된 제1권 <한복입은남자>는 조선 세종대 과학자로 널리 알려진 장영실에 대해, 지금 막 출간된 제2권 <제명공주>는 백제의 역사죠. 제3권은 신라에 대한 내용이에요. 우리 역사학자들이 밝히기 싫어하는 것들, 그렇지만 진실인 것들을 찾고 있어요. <한복입은남자>를 출간하려고 할 때 서울대학교 역사학자 교수님께서 추천사에 “역사학자가 못하는 일을 이상훈 감독이 했다”고 이렇게 써줬죠. 역사학자는 있는 기록만 가지고 주장해야 하니까 답답한데 이상훈 감독은 역사학자가 아니기 때문에 이럴 수도 있겠다하는 사실을 가지고 써주니까 너무 좋았다고요. 저는 역사학자들이 기록이 없어서 말하지 못하는 부분들을 영화감독의 상상력으로 접근해 보려는 거예요.
일본은 곧 백제다
시청률의 황제로 한국 방송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자 신동엽 강호동 등 정상의 예능인들의 뽑은 최고의 멘토, 그리고 영화와 뮤지컬에서도 히트작은 끊임없이 내놓고 있는 마아다스의 손으로 불리는 이상훈 영화감독 겸 저자는 이번 <제명공주> 책을 내면서 “일본은 곧 백제다”라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고 말했다. 일본학자들이 인정하고 일본 곳곳에 숨어 있는 백제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는 그는 그럼에도 정작 백제의 본고장인 호남에서 백제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는 안타까움을 나타냈다. 일본의 천황이 된 백제공주 <제명공주> 1,2편은 백제를 살리기 위해 나라의 온 운명을 걸었던 제명천황의 미스터리를 흥미진진하게 풀어내고 있다.